◆가끔 복잡하고 힘든 질문 앞에서 ‘모르겠다.’는 대답을 쉽게 한다. 답이 ○인지 ×인지를 묻는 질문마저도 그렇게 대답해 버린다. 깊게 생각을 하기 싫어서, 아니면 책임을 회피하고 싶을 때 애매하게 하는 ‘모르겠다.’는 말은 정말 간편한 대답이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쉽게 하는 말 가운데 가장 쉬운 해결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애매한 대답으로 그 순간을 모면했어도 금방 내 의도를 들키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내게 유리할 경우 더욱 그렇지 싶다.
사람들은 하느님한테서 다양한 능력을 받았다. 직장이나 교회 안에서 또는 여러 단체에서 함께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받은 능력을 쓰게 될 기회가 많다. 공동선을 위해서 그 능력을 쓰는 것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할 좋은 기회인 동시에 그만큼 책임감이 뒤따르기에 많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여러 이유를 들어서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하겠지.’라든가, 책임을 지는 것이 귀찮아 이런저런 계산을 하면서 미루다 보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거나 의견을 말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게 된다.
공동선을 위해 내게 주어진 책임이 힘들고 불편하고 손해를 좀 보더라도 그 자체를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을 나누는 특권으로 삼을 수는 없을까? 이것이 하늘에서 받은 권한을 쓰는 기회가 아닐까?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고 담대히 답할 수 있는 그런 권한은 각자의 자유의지 안에서 공동선을 위해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고 말할 수 있을 때 실현된다.
김희경 수녀(그리스도의 성혈 흠숭 수녀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