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인 ‘주님의 기도’는 일곱 개의 탄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은 모두 기도의 우선순위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도할 때 먼저 주님의 가르침대로 하느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이어서 개인과 공동체의 필요를 청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기복적 기도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기도의 최우선적 지향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예수께서는 기도할 때 무엇보다 먼저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내시도록,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도록,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그런데 우리는 일견 이 청원을 어떤 세계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곧 아버지의 뜻과 나라가 오늘 이 한국 사회와 전세계에서 구현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해석에서 간과하기 쉬운 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자리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청원이 일차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주체는 바로 기도하는 사람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감히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사람에 맞갖도록 자신의 말과 행동을 성화시켜야 하며, 그분의 나라와 그 뜻이 오늘 나를 통해서 가정과 직장, 사회 안에서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 이름과 나라와 뜻이 일차적으로 구현되어야 할 자리는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우리는 기도의 시작에서 이 모든 것이 먼저 내 안에서 실현되도록 하느님께 청해야 하는 것이다.
엄재중(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