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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73) 요한의 소명은 여기까지 / 하청호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22 조회수1,011 추천수13 반대(0) 신고

 

 

 

 

   요한의 소명은 여기까지

 

                                          글쓴이: 하청호 (대전가톨릭대학교 영성관 보좌신부)

 

 

신학생 때 한 선배가 인생을 제대로 알기 위해 군대와 병원, 감옥, 이 세 곳은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일리는 있는데 나는 정말 가고 싶지 않은 곳들이었다.

 

돌이켜보면 훈련소에 있을 때나 별안간 다리를 다쳐 입원했을 때 무엇보다 내 뜻대로의 일상을 포기하고 당장 원치 않는 상황에 들어가는 당혹감으로 힘들었다.

 

군대에 있을 때, 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당장 찾아뵙지 못해 밤늦도록 컴컴한 부대막사를 돌며 눈물을 찔끔거렸다. 나중에 오진으로 밝혀졌지만 움치고 뛸 수 없는 숨막힘에

군대는 내게 감옥과 같았다.

 

감옥은 온갖 죄와 사연들이 있는 곳, 어쩔 도리없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격리의 공간일

것이다.

 

지배자 헤로데의 온갖 악행을 서슴없이 책망하다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 자유로이

광야를 거닐던 그가 음습한 감옥에 갇혔을 때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요한의 두 눈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 을 최초로 알아보았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확신하였다.

하지만 웬일인지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바로 세우시지 않았다.

늘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마귀를 쫓고 병자들을 고쳐준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

 

심지가 굳었던 요한도 초조한 듯 제자들을 보내서 묻는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나요? "

 

불확실한 희망 속에 묻지만 요한은 속 시원한 답을 못 보고 감옥에서 비운의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것은 심판의 왕으로 군림하는 힘이 아니라

가난한 이, 소외된 이와 함께하는 작은 사랑의 실천임을, '말구유에 사람으로 오시어'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에게 핍박받아 죽음을 당하시어'

'죽어서까지 작은 빵이 되어 우리에게 찾아오심' 을 예수님은 보여주셨다.

 

 

2년 전 새 신부가 되었을 때 한 형제가 말했다.

"신부님, 이제 결혼하신 거죠?

 저는요 집사람에게 꽉 잡혀 삽니다.

 그러니까 집안이 편안해요.

 신부님도 결혼하셨으니까 꽉 쥐여사세요."

 

하느님께 꽉 쥐여살라는 뜻이 되겠구나!

'그저 십자가를 지러 왔을 뿐' 임을 알고 왔지만 그간 얼마나

'날 위한 나' 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았는가?

 

사실 요한도 많은 제자들이 있었다.

형식화된 종교생활에, 영적인 목마름에 지친 수많은 사람들이 요한의 설교를 듣고 흥분이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요한의 소명은 여기까지,

목마른 사람들을 주님의 우물가에 모이게 하여 생명의 샘에서 물을 길을 수 있도록

주님의 자리를 비워드리는 것이 그의 성소였다.

 

세례자 요한은 '영원한 말씀을 위한 광야의 소리' 로 예수님의 길을 닦고 스러져갔지만,

분명 인류의 밤길을 비추던 빛들의 결정판이요, 태양이 뜨기 전 새벽과도 같았다.

 

                  <가톨릭 다이제스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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