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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의 종" --- 2007.6.24 주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7-06-24 조회수681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7.6.24 주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이사49,1-6 사도13,22-26 루카1,57-66.80

                                                                

 

 

 

 

"주님의 종"

 



잘났든 못났든,

영명축일 축하 받을 때의

꽃처럼 피어나는 환한 얼굴들을 보면 저절로 기뻐집니다.

 

새삼 얼마나 귀한 목숨인지 깨닫습니다.

 

오늘 성 요한 세례자 대축일에

영명축일을 맞는 우리 요셉수도원의

정 요한 수사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영광스런 축일을 진심으로 이 기쁨 축하드립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 안에 머물고

  또한 당신 사랑이 그 안에 있기에
  우리들은 이 기쁨 노래하며 이 기쁨 당신께 드리옵니다.”


언제 부르고 들어도 공동체를 하나 되게 만드는

흥겹고 기분 좋은 축가입니다.

 

지난 저녁 식사 축하 파티 전

조촐한 꽃들이 준비되고 이어 케이크를 자르고

자그마한 축포가 터지고

어린이들처럼 함께 박수치며 환호할 때는

누구나 공동체의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생일이든 영명축일이든 축하받을 권리가 있고,

한 번 뿐이 없는 소중한 인생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조촐하나 정성을 다해 품위 있게

형제들이나 부모들, 남편이나 아내, 자녀들의

생일이나 영명축일 꼭 기억하여 축하해 주는 것,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엘리사벳이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을 때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합니다.

 

이렇듯 축복 받아야 할 탄생이요 생명인데

과연 그렇게 되고 있을까요?

 

이번 주 가톨릭 신문의 다음 기사가

마음을 어둡게 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신자들 중에서도

  부분적으로라도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87.6% 로 압도적이었고,

  그 이유로는 개인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60.7%로 절반을 넘었다.

  또 실제 낙태 경험이 있는 여성이 34.2%에 달했고

  3번 이상 낙태를 한 여성이 11.6%로 나타났다.’ 합니다.


축복 받고 태어나야할 생명들이

얼마나 죽었고 죽어가고 있으며 죽어가겠는지요!


무조건 보호받아야할 생명이요

축복 받아야 할 탄생이자 인생입니다.

 

축복 받은 세례자 요한의 삶

그대로 우리 삶의 원형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종이었고

우리 또한 주님의 종입니다.


바로 이게 우리의 신원이자 정체성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에 나오는 주님의 종의 고백,

예수님의 고백이라 해도 좋고

세례자 요한의 고백이라 해도 좋습니다.

 

아니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의 고백으로 삼으면 더욱 좋습니다.

 

세상에 우연한 생명은 없습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선물들입니다.

 

그러니 나름대로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찾아내는 게 바로 구원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 모두가 세례자 요한처럼

‘주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었다.

  주님께서는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주님 친히 모태에서 빚어 만드신 주님의 종인 우리들입니다.

장차 주님의 종이 될 태아들을 낙태 시키는 행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일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세상의 빛인 주님의 종인 세례자 요한이자 우리들입니다.


바로 다음 우리 모두를 항한 주님의 격려 말씀이

우리를 한껏 고무시킵니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나의 영광이 빛나리라.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이 명령에 충실했던 세례자 요한이요,

오늘의 그리스도의 교회들입니다.


세상의 빛 되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주님의 종으로서의 삶,

우리가 추구해야 할 유일한 삶입니다.



세례자 요한,

주님에 앞서 그분의 길을 준비하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종, 막연한 명칭이 아닙니다.

 

평생 죽을 때 까지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겸손한 사람이 주님의 종입니다.

 

요한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다 마칠 무렵,

다음 그 말씀을 통해 그의 겸손이 투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사실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정도의

낮은 자세의 겸손 있을 때 주님을 만납니다.


역시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신

겸손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늘 높이에서 만나는 주님이 아니라

땅 낮은 곳에서 만나는 주님이십니다.


세례자 요한 절대로 주연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모두가 주연이 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알고 보면 주연은 주님 한 분 뿐이고

우리는 모두는 조연일 뿐입니다.

 

조연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알아

이를 충실히 하는 게 겸손이자 지혜요,

바로 이의 모범이 세례자 요한입니다.



세례자 요한, 광야의 은수자였습니다.

그러나 세상과는 격리된

자기도취의 별난 사람은 아니었기에 제자들도 많았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이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세상이 시끄럽고 복잡하고 혼란할수록

광야의 고독과 침묵 중에 깨어있음은 필수입니다.

 

이 광야의 고독과 침묵 중에 깨어있어

강건해 지는 정신과 육체요,

깨끗한 마음에 빛나는 영혼입니다.

 

이 광야의 고독과 침묵이 없어

지식만 가득하나 지혜는 메말라

날로 얕고 가벼워지는, 천박해지는 현대인들입니다.

 

함께의 넓이만 있고

홀로의 깊이가 없으면 얼마 못가 그 삶 말라 버립니다.


하여 정신질환자들이,

우울증 환자들이 그리도 많은 것입니다.

 

육체는 비만인데

영혼의 영양실조 환자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리 몸만 다이어트 하면 무엇 합니까?

 

광야의 고독과 침묵 중에 깨어있어

영혼도 다이어트 해야 비로소 온전한 건강입니다.

 

말 그대로 굳건한 정신과 빛나는 영혼,

깨끗한 마음으로 ‘살기위하여’

하루 중 광야의 장소와 시간을 마련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광야의 침묵과 고독 중에

주님의 종으로서의

신원을 새롭게 확인하면서 겸손도 회복하기 때문입니다.



살만한 세상입니다.

삶은 축복입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환히 드러내는

‘주님의 종’되어 살라 주어진 소중한 인생입니다.

 

성 세례자 요한의 삶,

우리 수도자들은 물론

참된 구도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모범입니다.

 

이 복된 미사시간,

주님은 우리 모두를 축복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의 종, 너에게서 나의 영광이 빛나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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