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 나오는 황금률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것이야말로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 곧 성경 전체의 정신을 종합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어지는 구절에서 주님은 이 길이 아주 좁아서 이 길로 들어가는 사람은 매우 적다고 하신다.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좁은 길로 가는 것은 인간 본성 안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닌 듯하다.
나를 떠나 너에게로 가는 것은 간단치 않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타인을 더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어쩌면 원수마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나 자신을 돌이켜볼 때 너무 과도한 주문일 수 있다. 나약한 육신과 이기적인 본성은 너무나 쉽게 내 안으로 움츠러들기 때문이다.
원수가 괜히 원수인가?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정도로 나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친 인간이기에 그에게 원수라는 딱지를 붙인 것 아니던가? 그런 원수를 사랑하라니. 역시 그 길은 너무 좁다고 한탄한다.
인류 역사 안에서 모든 위대한 종교는 대부분 인간이 갖는 이기심의 문제에 천착했다. 어떻게 하면 안으로만 숨어들려는 나를 버리고 타인에게 갈 수 있는지 그 원인과 대안을 제시했기에 역사 안에서 의미 있는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이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은 타인에게 나아가지 않고서 오로지 내 안에만 머물러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타인 없이는 나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너의 말을 들으면서 나를 비로소 깨닫게 되고, 너에게 이끌리면서 나 자신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예수께서 자신의 전 생애와 죽음으로 증명하신 그 길 위에서, 내가 지금 당장은 자주 넘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엄재중(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