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심은 사연> ... 윤경재
당치게 꿈 먹은 여름비가
허물어져 가는 양반가 북향 골목
잔가지 없이 굵고 다라진 古木에
수줍은 주황색 꽃등을 내단다
질긴 하룻밤 인연
임금의 씨 없는 시앗신세 서러워
담장 너머 넝쿨 늘어뜨려
길손에게 임 계신 곳 반겨 묻네
닥지닥지 촛대 같은 꽃망울은
보리쌀 한 되 얻으러 큰댁에 간 아부지
길 잃을까 밤새도록 뜬눈 밝히는
흥부네 개구쟁이 초롱초롱 눈망울
속 깊은 양반규수 애먼 데로 시집와
애비 닮아 가난해도 우애 깊은 아이 낳고
함부로 꽃대 따면 눈먼다고
미물의 정절 지켜 주라고
기다리다 보면 꽃으로라도 핀다고
키 커도 한껏 낮춰 피는 능소화를 심었다.
*능소화 꽃술에는 독이 있어 꽃 만지고 눈을 비비면 해롭다고 합니다.
능소화는 주로 양반가에서 담장 가에 심었으며 전설에는 소화라는 궁녀가
하룻밤 임금의 시앗이 되었다가 궁중 세도에 밀려 평생 임 그리며
상사병으로 죽어 꽃이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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