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주 신부(예수회)
◆어느 정도의 간청을 ‘애원’이라 할 수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가나안 여인은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애원하고 있다. 그런데 여인을 향해 예수님은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하시며 거절하신다. 평소의 예수님답지 않은 표현이다.
이 말씀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첫째는 이스라엘 자손들만 구원하시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여인의 신앙을 알아보고 난 뒤에 당신의 입장을 정하시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은 첫 번째 태도를 취하실 분이 아니다.
여인은 자신의 애원을 단호하게 거절하신 예수께 엎드려 절하며 아주 공손하게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고 말씀드린다.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그제서야 예수님은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라고 하시며 여인의 딸을 고쳐주신다. 여인의 영적이고 지혜로운 애원이 예수님을 감동시킨 것이다. 우리는 가나안 여인처럼 예수께 애원한 적이 있는가?
중국에서 선교를 하고 있을 때 성당이 없어 주일미사는 호텔 강당을 빌려서 드리고 평일미사는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드렸다. 그런데도 나를 그냥 두길래 어쩐 일인가 싶었다. 얼마 후 평일미사를 막 끝냈는데 초인종 소리가 요란했다. 중국어로 시끄럽게 해대는 소리가 “빨리 내려와 오라를 받아라.” 하는 것처럼 들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다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형사 세 명이 와서 차 문을 열어놓고 타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연행이었다. 나는 “이런 법이 어디 있냐? 영장을 보여 달라. 그러면 타겠다. 그렇지 않으면 못 탄다.” “타라.” “못 탄다.” 30여 분을 옥신각신하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기도를 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당신께서 저를 보내셨으니 책임지십시오. 저에게 지혜를 내려주십시오.’ 그러자 곧 응답이 왔다. ‘일주일 후에 자진 출두하겠다고 해라.’ 얼른 그대로 말했더니 통했다. 지면 관계상 그 뒷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겠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얼마나 주님께 간구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필요한 것을 간구하면 반드시 들어주신다. 체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여러분! 참으로 이방 여인처럼 지혜로운 간구를 드리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마음을 녹여 그분의 능력을 자신의 능력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참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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