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이 수녀(샬트로성바오로수녀회 서울관구)
◆셈하기 좋아하는 우리의 마음은 간장종지만하다. 그래도 베드로는 제법 큰 간장종지 마음을 지녔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자신의 넉넉함을 은근히 내비친다. “주님,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여라.”
빗물 한 방울이 태평양의 바닷물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주님께선 한량없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고 살면서도 자기 동료의 작은 죄를 용서해 주지 못하는 간장종지 같은 마음을 지닌 우리에게 이르신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고. 필경 어떤 이는 한 번, 두 번, 세 번 하며 이번이 몇 번째인지 헤아릴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시금 알아들으라고 만 탈렌트를 빚진 종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당시 헤로데 임금의 1년 수입이 구백 탈렌트였다고 하니 만 탈렌트는 당시 화폐가치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액수다. 이 엄청난 빚을 갚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안 임금은 전액을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 그 종은 자신한테 작은 빚을 진 동료의 애원을 뿌리치고 감방에 가두었다. 하느님께 죄를 탕감받은 우리는 여전히 고집스럽게 형제의 눈에 든 티를 끄집어 내겠다고 야단법석 이다.
주님께선 형제에게 인색한 우리에게 다시금 엄중히 말씀하신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마태 5,26)라고. 우리는 왜 무한히 넓은 용서의 바다에서 하나 되지 못하고 간장종지를 고집하고 있는가?
만 탈렌트를 탕감받고도 자신에게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못한 종은 결국 감옥에 갇히고 만다. 하늘에서 아무리 많은 비를 내려주어도 받을 사람이 항아리 뚜껑을 닫아놓고 있다면 담을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내 마음 안에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 전혀 없다면 아무리 많은 은총이 부어져도 소용이 없다. 마찬가지로 많은 은총이 쏟아져 내려오지만 우리 안에 그분의 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용서의 은총을 맛볼 수 없다.
용서할 수 있는 힘은 나보다 훨씬 크신 분이 내 안에 오셔야만 가능하다. 그분이 우리 안에 오셔서 일하셔야 한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하고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한다.”고 고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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