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난한 죽음에 대하여 <로 6,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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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이수 | 작성일2007-10-04 | 조회수519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프린치스코 성인의 [가난한 삶] 속에 죽음을 '누이'로 불렀습니다.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에서 오는 이 애착] 마저도 소유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죽음은 인간의 정신작용에서 인식되어진 '삶의 끊김'이라는 애착을 우리에게 갖게 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영혼의 작용에 의해서 미처 알수 없는 '영적 세계'에로 새로 들어섬이기도 합니다.
'삶의 끊김'이라는 이런 소유의 애착에서 벗어나
'영원' 안에서의 하나의 새로운 전환점으로써 여길 수 있다면
[죽음이라는 시간의 상태]는 여전히 그에게 혹은 나에게 "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기존(정신작용)의 인식에 대한 '무소유'는
'누이'로 받아 들일 수 있게 하며
'죽음의 현재'를 초월할 수 있게 합니다.
-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 <로마서 6, 3-10>
'초월'은 '무감각'이 아니기에
'죽음'은 슬프며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죽음'은 영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영적인 존재)으로 초월할 수 있게 됩니다.
아버지의 품 속으로 돌아간 영혼은
다시 육신과 결합하여 영원한 복된 행복의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는 이 희망으로 슬픔을 이기고 은총을 잃지 않습니다.
죽음 아래에 있는 이들에게 용기와 인내를 잃지 말았으면 하고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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