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팔짱끼고 관망하기-판관기24 | |||
---|---|---|---|---|
작성자이광호 | 작성일2007-10-12 | 조회수529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팔짱끼고 관망하기-판관기24 <생명의 말씀> <말씀의 길잡이와 실천> 오늘의 말씀을 읽어보면 시스라의 철병거와 사우는 데 전 이스라엘이 동참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에브라임 지파나 베냐민 지파, 즈불론 지파, 이싸갈 지파, 납달리 지파, 그리고 므낫세 지파 등은 이 전쟁에 참여하였습니다. 특히 스불론 지파와 납달리 지파는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르우벤 지파와 단 지파, 아셀 지파는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요르단 동편의 기름진 땅에 살고 있었던 르우벤 지파는 다른 지파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또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시원한 시냇가에서 끝도 없는 토론을 일삼았다고 합니다. 내용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쟁을 할 필요가 있느냐? 철병거 군대와 싸워서 승산이 있느냐? 등등..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추론을 했을 것이고 그것을 여론의 형태로 포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기껏 결정한 것은 우리 지파는 전쟁에서 빠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번 전쟁은 요르단 강 서편의 일이고 르우벤 지파들은 요르단 강 동편에 사니까 남의 일처럼 생각되었을 것이고 그래서 굳이 피를 흘리는 희생을 치르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정복 전쟁 초기와는 판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전쟁 초기 여호수아가 백성을 이끌 때 요르단 강 동편을 먼저 점령한 후에는 여자들과 아이들은 그 땅에 남겨 놓고 르우벤 지파의 전투 부대는 강을 건너 다른 지파의 정복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함께 싸워 주었기 때문입니다. 살만해지니까 하느님의 뜻도 과거의 전통과 약속도 다 잊고 나만의 번영과 안녕을 추구하게 된 것이죠. 형제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는 중에 시원한 냇가에 앉아서 목동들의 피리 소리를 들으며 전쟁을 무슨 영화 관람하듯이 구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고 해상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단 지파나 아셀 지파도 별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리적으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키손 강 근처에서 그들이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배를 타며 자기들의 생업에만 종사했을 뿐이니까요. 기득권과 기존에 자신이 누리던 부를 계속 누리고 싶어하는 사람은 새로운 변화를 거부합니다. 그들이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고 또 그 변화의 바람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 해도 세상이 주는 기득권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정말 완고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지파의 전투가 아니더라도 다 함께 싸웠던 조상의 전통도 잊었고, 하느님의 말씀도 잊었습니다. 행동으로 나서야 할 때 신중과 조심을 내세우면서 쓸데없는 토론으로 시간을 끄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간을 끌면 변화의 바람이 약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신중과 조심은 사실 포장인 경우가 많고, 그 내면에는 내 식대로 내 편한 대로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감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의 요청을 받았는데 자기 일 아니라고 팔짱 끼고 관망만 하는 사람들이 하느님께 복을 받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은 그들에게 하느님의 천사가 외칩니다. "저주, 저주를 받아라, 그 안에 사는 것들, 저들은 야훼를 도우러 나오지 않았다. 야훼를 도우러 용사들과 어울려 나오지 않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