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적敵>
거리에서
산등성이에서
붉게 타야 할 갈잎과
고추잠자리가 떨고 있다
가을을 타고 놀던
생명의 용약이
처마 끝에 숨어
날갯죽지 접고 있다
빛 가을이 찬 비에
한 모서리 무너져 내리고 있다 푸른 하늘이라야 선명할
보색이 힘을 잃고
가도, 그 놀던 자리는
남아 있으면 좋으련만
성실한 친구 같은 적敵을 따라
허공에 마음 두고
다시 태어날 꿈 그리며 사라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