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미화(양양 조산초등학교)
◆돈 좀 안 벌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그냥 날 밝으면 밭에 가서 일하다 와서 아침밥 지어먹고, 또 밭에 나가 일하고, 산에 올라가 버섯도 따고 산나물도 캐고 열매도 따고, 그걸로 여러 가지 저장 음식도 만들어 가면서 겨울을 맞이하고, 겨우내 눈 덮인 마을 조용한 집안에서 난롯가에 앉아 책을 읽고 뜨개질을 하면서 지낼 수 있다면 무얼 더 바랄까?
아침부터 정신없이 밥 차려 먹고 치우고 차를 타고 나갔다가 저녁이면 지친 몸으로 돌아와 저녁밥 대충 먹고 치우고 밤을 맞이하는 수십 년 내 일상이 요즘엔 정말 징하게 느껴진다.
초임 시절에 만난 그이가 ‘서울은 소돔과 고모라예요. 난 서울에서 절대 못살아요.’ 했던 말이 어린 맘에 오랫동안 남았다. 결혼 후 우린 인천에 살림을 차렸고 10년 동안 나는 서울로 출근을 했다. 전철 타고 버스 타고 밤중에 총알택시도 타고`…. 만삭의 몸으로 육교를 오르내리고 만원 전철에 시달리면서 참 열심히 다녔다. 그러면서 우리는 열심히 전교조운동을 하면서 끝까지 참교사의 길을 걸으리라는 굳은 신념을 가졌다.
남편이 갑자기 병이 나는 바람에 작년 봄 양양 산골로 와서 아침마다 출렁이는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출근을 하고 있다. 한데 나는 이 아름다운 출근도, 순진무구한 아이들 눈망울도, 소나무 아래 숲속 교실도 다 버리고 그냥 마당에서 밭으로 산으로 논으로 풀들과 이야기하면서 살고만 싶다.
그런데 나이 오십에 들어서 비로소 갖게 된 이 꿈을 아직도 이루지 못하는 건 교육에 대한 열정보다는 꼬박꼬박 받는 월급 때문이다. 노부모에, 두 대학생에, 늦둥이 유치원생까지 세 집 살림을 하다 보니 직업을 버린다는 것, 아니 월급을 버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나를 따르라.” 그 한마디에 두말없이 모든 것을 버린 베드로의 행동을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나는 왜 아무것도 버리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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