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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 18일 야곱의 우물- 루카 21, 5-19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11-17 조회수474 추천수5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루카 21,5-­19)
 
정 세라피아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예루살렘과 성전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현존이 머무르는 곳이며 유다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성인 남자들은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가야 했습니다(탈출 23,14; 34,23; 신명 16,16).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2,41)고 루카 복음사가는 전합니다. 예수님은 해마다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에 오르내리시면서 성전이 변질되어 가는 모습과 그 안에서 빚어지는 죄악을 보셨고, 어느 날은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격노하시며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셨습니다(루카 19,45-­46).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후 예수님은 줄곧 성전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고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는 성전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성전이 참된 예배를 하는 장소로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미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루카 19,41-­44).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 군대에 의해 완전히 파괴당합니다만 예수님은 성전 파괴의 이유가 ‘하느님께서 찾아오신 때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19,44)이라 하셨습니다. 곧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였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다윗의 유언대로 첫 번째 성전을 지어 봉헌하였을 때 하느님께서는 “나는 네 기도를 듣고 이곳을 나의 것으로 선택하여 제사의 집으로 삼았다.”(2역대 7,12)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이 돌아서서, 내가 너희 앞에 내놓은 계명과 규정을 저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가서 그들을 섬기고 경배하면 나는 내가 준 땅에서 너희를 뽑아버리고,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별한 이 집을 내 앞에서 내버려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속담거리와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리겠다.”(2역대 7,19-­20)
 
예루살렘 성전은 이민족의 침입으로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성전이 파괴된 근본 원인은 하느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긴 탓이었기에 예수님도 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카르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어디가 맞는지 예수께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산(그리짐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요한 4,21)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습니다(마태 27,51). 또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는 말씀을 당신 부활로 성취하셨습니다.
 
마침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제는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요한 4,23)가 오게 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사실 집을 인간이 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하늘이 당신의 옥좌며 땅이 발판인 그분은 어디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표현대로 이제는 주님의 살과 피를 모시는 우리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2코린 6,16)입니다. 이제 우리가 영과 진리 안에서 하느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내가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드리는 그곳은 하느님께 산 예물을 드리는 제단이 됩니다.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1베드 2,5)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루카 21,7)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 직접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당부의 말씀만 하십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세상 종말설을 운운하며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이들이 있습니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신흥 사이비 종교에 빠지거나 근래에 일어나고 있는 온갖 영성 운동에 심취하여 신앙을 저버리기도 합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희귀병의 출현, 전쟁과 테러 위험 등을 생각하면 참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고 이러다 세상의 종말이 올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난 봄 황사가 심해 한낮인데도 어두워진 것을 보고는 탈출기에 나오는 ‘어둠의 재앙’이 떠올랐습니다.
 
죽음의 문화가 만연한 이 시대에 교회는 원칙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써 낙태와 피임을 반대하고,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합니다. 시대의 흐름에 역류한다고 교회를 비난하거나 반발하는 것이 또 하나의 박해라면 우리는 교회의 신념에 동참함으로써 피 흘림 없는 순교를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형리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조리 있게 변론할 수 있도록 작용하신 성령의 역사를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 성령께서 지금도 양심을 지키며 제대로 살려고 애쓰는 모든 사람들 안에 작용하심을 믿는다면 좀 더 소신 있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성전이 되고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바치는 것은 이러한 일련의 것들로서 이루어집니다.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묵시 21,2) 있는 천상 새 예루살렘 성전을 갈망하며, 항구하게 십자가의 길을 가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야겠습니다. “보라, 내가 곧 간다. 나의 상도 가져가서 각 사람에게 자기 행실대로 갚아주겠다.”(묵시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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