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2월 5일 대림 제1주간 수요일 - 양승국 신부님 | |||
---|---|---|---|---|
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7-12-05 | 조회수1,008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12월 5일 대림 제1주간 수요일 - 마태오 15,29-37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역 광장에서 만난 천국(天國)>
얼마 전의 일입니다. 회의 차 지방에 갔다가 밤늦은 시간에 집 가까이 있는 국철역에 도착했습니다. 역 광장으로 내려오니 참으로 흐뭇한 광경이 제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국철역을 배경으로 숙식을 해결하고 계시는 노숙자분들을 위해 인근 한 교회신자들의 무료 급식 봉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저희 수도회에서도 노숙청소년들을 위해 뭔가 해야 되지 않겠냐는 논의가 있어 저는 한참동안 바짝 다가가서 유심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봤습니다.
저를 놀라게 한 것은 봉사자들의 일사 분란함이었습니다. 손발이 척척 맞았습니다. 배식봉사를 하시는 분들, 뒷정리를 하시는 분들, 질서를 잡는 분들...아마도 많은 연구과 시행착오, 기도 끝에 얻어진 결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봉사자들이 환한 얼굴로 기쁜 마음으로 봉사에 전념하고 있음에 보기가 좋았습니다.
줄은 모두 세 줄이었습니다. 첫 번째 줄에서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는 쇠고기 국밥을 나눠드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한 그릇 받아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냄새가 그럴 듯 했습니다. 국밥을 받아든 분들의 얼굴이 일순간 환해졌습니다. 잠시나마 행복함을 맛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분들에게 그 순간은 아마도 천국을 맛보는 순간이겠지요.
그리고 두 번째 줄에서는 긴 밤을 꼬박 새우잠을 자야할 노숙자 형제들의 새벽녘 출출함을 달래주기 위해 먹음직스럽고 커다란 빵이 하나씩 나눠지고 있었습니다. 보너스로 빵까지 받아든 분들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깃드는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 번째 줄에서는 후식으로 커피를 원하는 분들에게 일일이 타드리고 있었습니다. 노상이었지만, 소박했지만 정성이 담긴 풀코스 서비스를 받은 분들의 모습이 행복해보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20분 이상 배식하는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저를 흘끔흘끔 바라보시던 봉사자 아주머니께서 참다 참다 못해 제게 한 소리 크게 외쳤습니다.
“아저씨, 백날 여기 서 있어봐야 소용없어요. 아저씨도 저 뒤로 가서 줄 서세요!”
아주머니의 한 마디에 제가 받은 충격이 컸지만 당시 역 앞에서 저는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밤늦은 시간 잠깐이었지만 역전에서 있었던 그 소박한 행사(무료급식)는 진정 감동 깊은 축제의 한마당이었습니다.
소박하지만 정성을 다해 준비한 따뜻한 음식들이 세파에 지친 이웃들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사랑과 나눔의 축제, 다름 아닌 최후의 만찬, 즉 미사였습니다.
오늘 복음 역시 예수님의 측은지심이 발휘되는 복음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능력을 전해들은 수많은 불치병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실낱같은 마지막 희망을 안고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의 옷자락 끝이라도 붙잡아보려고 필사적으로 예수님께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에서 한번 벗어나고 싶어 기를 쓰고 예수님을 에워쌌습니다. 병자들과 그 가족들은 자신들의 차례를 놓칠까봐 끼니마저 거르면서 자신들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났습니다. 허기에 휘청휘청 거리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예수님 눈에 목격되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의 측은지심이 발휘되는 순간입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 한 끼 제공하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질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바로 복음이 실현되는 행위, 구원을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무료급식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단기처방에 불과하다. 노숙인들을 더 양산시키는 일이다. 그들에게 근본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들 나름대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온 분들인지 모릅니다. 가난의 악순환을 한번 벗어나 보려고 얼마나 발버둥 쳐온 분들인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분들은 공정한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냉혹한 우리 사회의 피해자이자 희생자들일지 모릅니다.
점점 쌀쌀해져가는 날씨에 노숙인들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강구되길 기원합니다. 수많은 노숙인들, 또 후보 노숙인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우리들의 손을 통해서 작동되길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