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02 조회수1,317 추천수22 반대(0) 신고
 
2008년 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I am the voice of one crying out in the desert,
‘Make straight the way of the Lord,’
as Isaiah the prophet said.”

(Jn.1.23)

 
제1독서 요한 1서 2,22-28
복음 요한 1,19-28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어떤 시골 성당의 미사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성찬의 전례에서 사제가 축성 기원을 하는 순간이 있지요. 바로 이 순간에 복사는 종을 쳐서 교우들이 정신을 집중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런데 복사가 종을 치려고 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글쎄 종이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종을 칠 수가 없어서 복사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오랜 연륜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복사는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합니다. 즉, 종을 쳐야 하는 순간에 입으로 이렇게 말했지요.

“땡~”

어제 우리 본당 미사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뻔했습니다. 종을 쳐야 하는데, 글쎄 종을 치는 채가 사라진 것입니다. 항상 있었던 그 자리에 채가 없으니 종을 칠 수가 없었지요. 그 순간 복사는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앞선 이야기에 나오는 복사처럼 입으로 ‘땡~’하고 말할까, 아니면 주먹으로 종을 쳐서 소리를 내도록 할까……. 결국 침묵으로 종 치는 것을 대신했습니다.

평소에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으니 종을 치는 채가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 채가 없으면 종에서 소리가 날 수 없기에 종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즉, 종이 종을 치는 채가 없이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처럼, 주님을 떠나서는 우리의 존재 자체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지요. 주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오늘 복음에는 세례자 요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의 삶을 보면서 오시기로 했던 메시아가 아닐까 생각하지요. 그래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요한에게 가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누구요.”

이 질문에, “당신들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메시아가 바로 나요.”라고만 말했어도 아마 팔자가 피지 않았을까요? 메시아라는 사실이 부담된다면, 다음 질문에 나온 ‘엘리아나 예언자가 바로 나요.’라고만 말했어도 모든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면서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증언을 하면 그 자체로 하느님 곁을 떠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그리고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내고, 대신 철저히 주님을 증거함으로써 하느님 곁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높은 자리, 많은 재물. 우리들을 유혹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것들로 인해서 하느님 곁을 떠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세례자 요한처럼 용기 있게 거절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떠나서는 우리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주님 곁에 계세요.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마음의 행복은 반드시 누립니다.




보다 현명한 두 번째 편지(‘행복한 동행’ 중에서)

링컨 대통령과 그의 비서관 스탠튼에 관한 일화입니다. 어느 날, 잔뜩 화가 난 스탠튼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섰습니다.

“아니 자네, 왜 그렇게 화가 난 겐가?”

“나 원 참 기가 차서 말입니다. 글쎄, 각료 하나가 제 결정이 편파적이라지 뭡니까? 뿐만 아니라 툭하면 각하에 대한 험담도 늘어놓는 작자입니다!”

“그럴 수가!”

“그래서 제가 지금 그 작자에게 편지를 쓰려고요!”

“거 좋은 생각이군. 어서 편지를 써서 되갚아 주게나.”

스탠튼은 링컨의 부추김에 힘입어 즉시 편지지 위에 안 좋은 감정을 쏟아냈습니다. 그러곤 완성된 편지를 소리 내어 링컨에게 읽어 주었지요.

“좋아, 아주 신랄하군. 이제야 기분이 좀 풀리는 것 같네, 그렇지 않나?”

링컨의 말에 의기양양해진 스탠튼은 서둘러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링컨이 그를 만류하며 말했지요.

“자, 이제 그만두게. 그 편지는 부칠 수 없네.”

“네? 그만두라니요?”

“지금까지 실컷 헐뜯었으면 됐지 편지는 부쳐 뭐 하나. 나도 내 비위를 거스르는 사람들에게 수십 통의 편지를 썼지만 이제껏 한 번도 보낸 적은 없다네.”

“아니 그럼 왜 편지를 쓰라고 부추기신 거죠?” 얼이 나간 스탠튼이 물었습니다.

“부치지 못할 편지라도 쓰는 동안 분노란 감정이 사그라지니까 말이야. 자네도 훨씬 기분이 나아졌겠지?”

스탠튼은 황당했지만 링컨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잠자코 있던 그에게 링컨이 다시 말했습니다.

“자, 이제 보다 현명한 두 번째 편지를 써 보는 건 어떻겠나?”
 
 
 See that what you have heard from the beginning remains in you.
If it does, you also will remain in the Son and in the Father.
(1Jn.2,23)
 
 
 
Desire to Stay / Fariborz Lach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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