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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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미경 | 작성일2008-01-02 | 조회수1,332 | 추천수22 | 반대(0) 신고 |
2008년 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I am the voice of one crying out in the desert, (Jn.1.23) 제1독서 요한 1서 2,22-28
복음 요한 1,19-28
어떤 시골 성당의 미사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성찬의 전례에서 사제가 축성 기원을 하는 순간이 있지요. 바로 이 순간에 복사는 종을 쳐서 교우들이 정신을 집중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런데 복사가 종을 치려고 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글쎄 종이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종을 칠 수가 없어서 복사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오랜 연륜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복사는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합니다. 즉, 종을 쳐야 하는 순간에 입으로 이렇게 말했지요.
“땡~” 어제 우리 본당 미사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뻔했습니다. 종을 쳐야 하는데, 글쎄 종을 치는 채가 사라진 것입니다. 항상 있었던 그 자리에 채가 없으니 종을 칠 수가 없었지요. 그 순간 복사는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앞선 이야기에 나오는 복사처럼 입으로 ‘땡~’하고 말할까, 아니면 주먹으로 종을 쳐서 소리를 내도록 할까……. 결국 침묵으로 종 치는 것을 대신했습니다. 평소에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으니 종을 치는 채가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 채가 없으면 종에서 소리가 날 수 없기에 종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즉, 종이 종을 치는 채가 없이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처럼, 주님을 떠나서는 우리의 존재 자체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지요. 주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오늘 복음에는 세례자 요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의 삶을 보면서 오시기로 했던 메시아가 아닐까 생각하지요. 그래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요한에게 가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누구요.” 이 질문에, “당신들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메시아가 바로 나요.”라고만 말했어도 아마 팔자가 피지 않았을까요? 메시아라는 사실이 부담된다면, 다음 질문에 나온 ‘엘리아나 예언자가 바로 나요.’라고만 말했어도 모든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면서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증언을 하면 그 자체로 하느님 곁을 떠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그리고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내고, 대신 철저히 주님을 증거함으로써 하느님 곁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높은 자리, 많은 재물. 우리들을 유혹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것들로 인해서 하느님 곁을 떠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세례자 요한처럼 용기 있게 거절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떠나서는 우리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주님 곁에 계세요.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마음의 행복은 반드시 누립니다. 보다 현명한 두 번째 편지(‘행복한 동행’ 중에서)
링컨 대통령과 그의 비서관 스탠튼에 관한 일화입니다. 어느 날, 잔뜩 화가 난 스탠튼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섰습니다.
“아니 자네, 왜 그렇게 화가 난 겐가?” “나 원 참 기가 차서 말입니다. 글쎄, 각료 하나가 제 결정이 편파적이라지 뭡니까? 뿐만 아니라 툭하면 각하에 대한 험담도 늘어놓는 작자입니다!” “그럴 수가!” “그래서 제가 지금 그 작자에게 편지를 쓰려고요!” “거 좋은 생각이군. 어서 편지를 써서 되갚아 주게나.” 스탠튼은 링컨의 부추김에 힘입어 즉시 편지지 위에 안 좋은 감정을 쏟아냈습니다. 그러곤 완성된 편지를 소리 내어 링컨에게 읽어 주었지요. “좋아, 아주 신랄하군. 이제야 기분이 좀 풀리는 것 같네, 그렇지 않나?” 링컨의 말에 의기양양해진 스탠튼은 서둘러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링컨이 그를 만류하며 말했지요. “자, 이제 그만두게. 그 편지는 부칠 수 없네.” “네? 그만두라니요?” “지금까지 실컷 헐뜯었으면 됐지 편지는 부쳐 뭐 하나. 나도 내 비위를 거스르는 사람들에게 수십 통의 편지를 썼지만 이제껏 한 번도 보낸 적은 없다네.” “아니 그럼 왜 편지를 쓰라고 부추기신 거죠?” 얼이 나간 스탠튼이 물었습니다. “부치지 못할 편지라도 쓰는 동안 분노란 감정이 사그라지니까 말이야. 자네도 훨씬 기분이 나아졌겠지?” 스탠튼은 황당했지만 링컨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잠자코 있던 그에게 링컨이 다시 말했습니다. “자, 이제 보다 현명한 두 번째 편지를 써 보는 건 어떻겠나?” See that what you have heard from the beginning remains in you.
If it does, you also will remain in the Son and in the Father.
(1Jn.2,23)
Desire to Stay / Fariborz Lach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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