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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영식신부님의 '요한묵시록' 성경읽기 <굿뉴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03 조회수472 추천수2 반대(0) 신고
종말(終末).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단어다. 나(인간)는 나(인간) 자신의 죽음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하물며 개인적 차원의 죽음을 넘어선 세상의 종말을 매 순간 묵상하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종말은 어쩌면 먼 나라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종말은 우리 삶에서 떼어내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가 직접 종말을 이야기했고 바오로 사도도 종말을 선포했다.(마태 13, 39~49; 1코린 15, 24; 2테살 2, 1) 우리는 종말로 향해 나아가고 있고, 그래서 종말을 묵상하고 준비해야 한다. 종말은 더 이상 구석에 던져 놓고 무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반짝반짝 윤기 나게 닦아가며 늘 옆에 두고 있어야 할 그 무엇이다.

요한 묵시록은 일반적으로 신자들이 읽기에 조금은 난해하다는 느낌이 들지만(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요한 묵시록을 가까이 하지 못하지만) 전체 맥락을 알게 되면 그렇게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요한 묵시록에서 말하는 바를 크게 정리하면 이렇다. "지금 고통과 여러 가지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셔서 의로운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에로 부활시켜 주실 것이다.
 
'묵시'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베일을 벗기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언젠가는 휘장이 벗겨질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모든 것들이 환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제 그 휘장 속을 조심스레 들여다보자.
<이상 정영식 신부님>
 
요한 묵시록을 읽기 전에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점 하나 짚고 넘어가자. 묵시록은 논리로 읽는 책이 아니다. 논리적 차원의 글 읽기를 원한다면 철학 서적 등 학술서적을 보면 된다. 요한 묵시록은 학술서적이 아니다. 요한 묵시록은 오직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 전달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글 안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뜻을 파악하려 해야지, 논리적으로 분석하려 해서는 안된다. 열린 마음으로, 묵상하는 마음으로 요한 묵시록을 열어보자.

요한 묵시록은 인간 이성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은총이나 계시 없이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늘 나라의 천상왕국 신비에 대해 깨달을 순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직접 계시로 알려주시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 예언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묵시 1, 3)

인간은 구세주 앞에서 죽은 듯 엎드려 있고, 그 구세주가 오른손을 얹어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살아 있는 자다"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이어 요한에게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 곧 에페소, 스미르나, 페르가몬, 티아티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이아에 보내라"(묵시 1, 11)고 말한다. 모두 아시아에 위치한 나라들이다. 당시 아시아교회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었는데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로마의 그리스도교 박해였고, 또 다른 하나는 교회 내부에서 발생한 이단 문제였다. 많은 거짓 예언자와 거짓 교사들이 등장해, 거짓된 가르침으로 신자들을 현혹시키고 있었다. 이 문제는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는 이제 각 교회에 전할 내용을 말씀하신다. 때로는 격려하고, 칭찬하면서 때로는 호되게 꾸짖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호된 질책은 "나 이제 너희들과 단절이야, 절교야"라는 의미가 아니다. 빨리 회개하고 하느님의 참된 자녀로 돌아오라는 간절한 요청의 다른 표현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이 시작된다.
<이상 배광하 신부님>

그리스도는 에페소 교회 신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이어 스미르나, 페르가몬, 티아티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이아 등 교회에도 말씀하신다. 모두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하나 하나가 오늘날 우리 교회가 새겨 들어야 할 말씀들이다.
 
요한은 이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그리스도의 계시 내용을 편지로 써서 모두 보냈다. 요한은 이어 깊은 기도를 시작하는데 이때 또다시 성령에 사로잡혀(묵시 4, 2 참조) 신비의 세계를 보게 된다. 하느님 나라다. 많은 신자들이 이 부분을 난해하게 받아들이는데,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읽어 나가면 된다.

네 생물은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이라고 외치고 있다(묵시 4, 2~11 참조). 찬미와 경배가 울려 퍼지는 하느님 나라의 장엄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옥좌에 앉아 계시는 성부 아버지께선 오른 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계신다. 두루마리에는 일곱 봉인이 되어 있다. 그 일곱 봉인을 모두 뜯어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요한은 속상하다. 두루마리는 분명히 세상을 위해서 큰 의미가 담겨 있는 내용인데 일곱 봉인을 뜯고 읽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요한이 기도를 하다가 울음을 터뜨린다. 그때 한 원로가 나타나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울지 마라. 보라,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여 일곱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게 되었다." 유다지파에서 난 사자 다윗의 뿌리가 누구인가. 바로 그리스도다. 실제로 이때 어린양이 나와,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받는다(묵시 5, 1~7 참조).

그리스도는 진정으로 이 두루마리를 뜯기에 합당한 분이다. 바로 당신의 피로 모든 사람들을 속량하시어 하느님께 바치셨기 때문이다. 사실 하느님으로부터 두루마리를 뜯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구세주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가장 큰 영예와 찬양을 받으실 분은 바로 그리스도다.
<이상 정영식 신부님>
 
그리스도께서 일곱 봉인 중 첫 봉인을 떼신다. 그러자 흰색 말 위에 활을 든 사람이 화관을 받고 승리를 위해 나아갔다(묵시 6, 2 참조). 기품이 늠름한 승리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수는 이제 둘째 봉인을 떼신다.사람들이 서로 살해하는 일이 벌어지도록 땅에서 평화를 거두어 가는 권한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큰 칼을 받았다. 예수께서 이어 셋째 봉인을 떼시자, 악한 이들은 모두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묵시다(묵시 6, 5~8 참조). 이어 다섯 번째 봉인과 여섯 번째 봉인을 뗀 후에는 하느님의 정의가 바로 세워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신의 권세와 나라가 서기를 바라는 그런 울부짖음인 것이다. 실제로 울부짖는 이들에게 희고 긴 겉옷이 주어진다. 예수께서 이제 여섯번째 봉인을 떼신다. 당시 교회를 박해하고 있었던 권력자와 죄 지은 이들에게 내려질 하느님의 엄중한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그 일곱 번째 봉인을 떼는 날, 바로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지금 여기서' 볼 수 있을 것이다.하느님의 옥좌 앞에서 영광을 받는 의인의 모습과, 하느님과 함께 영광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것이다.

원로 한명이 다가와 요한에게 묻는다.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 요한이 "원로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하자, 원로는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순교자라고 하면 꼭 칼날이나 작두에 목이 잘린, 피를 흘린 이들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인생살이 자체가 순교다.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가. 이 어려움과 고통을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뜻을 묵상하면서 헤쳐 나가야 한다. 그럴 때 순교자가 된다. 삶의 순교자들은 훗날 하느님 대전에 설 것이다. 하느님은 그런 우리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묵시 7, 17).

지금까지가 자연 재앙이었다면 이젠 인간에게 직접 재앙이 나타난다. 죽기를 바라지만 죽음이 그들을 피해 달아날 것이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고통. 묵시록은 여기에서 가장 극심한 고통을 묘사하고 있다. 고통의 극한은 어디일까. 어쩌면 하느님을 직접 대면하면서도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고통이 바로 그렇지 않을까.
<이상 정영식 신부님>


--- 정리하였습니다. 계속 됩니다 ---
 
  출처 : 굿뉴스 / 복음생각, 생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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