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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5) 장님 할아버지와 양말장수 할머니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04 조회수615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3년12월13일 대림 제3주간(자선주일) ㅡ스바니야3,14-17;필립비4’4-7ㅣ루가3,10-18ㅡ

 

   장님 할아버지와 양말장수 할머니

                                         이순의

 

 

  

ㅡ 나 눔 ㅡ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타려고 계단 앞에 섰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가는 천국의 계단 같았다. 아래서 올려다 본 위에서는 겨울의 연한 가로등 불빛이 손짓을 하고 있다. 한 계단 두 계단 발을 옮기면서 빛을 향해 있던 시야는 발부리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안전한 디딤을 위한 초감각적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나의 눈은 계단의 중간에 멈추고 걸음걸이는 느슨해 졌다.


사각으로 된 돈 통 하나를 앞에 놓고 남루한 옷차림에 눈까지 감고 앉은 할아버지께서 다 마신 캔 커피 통을 들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시기 위해 돌리면서 연신 빨대를 쭉쭉 빨고 계신 것이다. 구걸을 하고 앉아서 세련된 광고의 이미지가 짙은 캔 커피 통을 젊은이도 아닌 시각장애인 할아버지께서 몇 모금이나 된다고 촌스럽게 돌리고 계시는지? 그 할아버지께서 그 자리에 앉아계신 것은 그렇게 오래 된 것 같지는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그리 오래 거슬러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참으로 짧은 순간이지만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저 할아버지가 저걸 직접사다가 드시지는 않았을 텐데?"

마음의 생각보다 앞서 나의 눈은 이미 할아버지의 윗 계단에 앉은 양말장수 할머니의 손에 가서 있었다. 할머니는 양말을 파시느라고 좀 늦으셨는지 그때서야 캔 꼭지를 따고 계셨다. 그리고 단숨에 마시고 좌판 아래쪽의 작은 상자 구멍으로 빈 캔을 밀어 넣으셨다. 할아버지처럼 캔을 청소하듯이 돌리지도 않았고 쪽쪽쪽 빨지도 않으셨다.

 

본당이라는 공동체에 소속된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끔은 ’진정한 나눔이나 자선은 무엇일까?’ 라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사람의 눈으로 자선하고 그 눈높이에 맞게 받아주기를 원할 때이다. 빈첸시오회에서 모금을 모아 본당 구역 내의 여러 계층에게 작지만 고루고루 분배하기위해 여간 애를 쓰고 있다. 실제로 그런 봉사를 하시는 분들은 경황이 없다. 나누어 준 돈이나 물품들이 어떻게 쓰여 지는지 까지 개인 개인에게 확인 할 여력도 없지만 확인하는 결례를 범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은 수고의 칭찬 보다 비난의 소곤거림이 창밖의 낙엽 한 잎처럼 쓸데없이 휘익 돌고 갈 때가 있다.

"신자들한테 돈 걷어서 왜 저런 사람을 도와주는지 몰라!"

이유는 거의 간단하다.

’저 사람 옷 입고 다니는 거봐라. 얼마짜리인가?’ 라든지 ’어느 날 저녁에 보니 술이 취해서 사람도 구분 못 하더라.’ 던지! 우리는 도둑이나 간첩의 얼굴이 뿔이 난 털 복숭이여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 때가 많다. 자선을 베풀었다 해서 받는 사람들이 다리 밑의 각설이 수준의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거나 신자들을 만날 때면 늘 감사한 마음으로 모범적인 삶을 살아주어야 한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현대의 삶은 너무나 복잡하다.

어제까지 잘 살은 교우가 오늘 거덜 나기도 하는 것을 보았고, 옷차림에 세련이 철철 넘쳐흐르는데 천원이 없어서 말도 못 하고 눈물을 흐르는 사람도 보았으며, 나라와 복지관등 여러 경로를 통해 경제적으로는 어찌어찌 살아갈 수 있으나 벗과 이웃이 없어서 그렇게 주어진 돈으로 술을 마셔버리는 사람도 보았다.  


세상은 모두에게 이유가 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은 판단에 대하여 너무나 많은 경고를 하고 계신다. 자선하는 사람들은 동전 한 닢을 내어 놓는 그 행위만으로 자선에 대하여 위로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나누고자한 나눔이 내 마음대로 나누어져야 한다면 그 나눔을 나눔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빈 캔을 버리고 돌아앉으려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 쳤다. 방긋이 웃으신다. 나도 덩달아 방긋이 웃었다. 무심코 버스정류장에 서서 구걸하는 장님 할아버지께서 정육점에 들려 하루 종일 얻어 모은 동전을 주고 비싼 등심 한 근을 사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할멈이나 가족을 위해 시멘트 계단의 얼음 같은 냉기를 참고 앉아, 발자국들에서 튕겨 나오는 수억의 먼지들을 마시며 구걸을 하였다.


지하철역에서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들은 등심을 사서 드실 할아버지 보다는  빵이라도 한개 겨우 사서 드시라고 자선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소득은 그 할아버지만의 자유가 아니던가?!


돌아 갔다.

나도 그 자유에 한몫을 끼어들고 싶었다.


구걸하는 장님 할아버지와 말동무 하면서 하루해를 넘겼을 할머니는 그 사이 좌판의 절반을 싸고 계셨다. 다시 짐을 풀어서 이것저것을 보여 줄 수 없다는 할머니는 남아있는 양말 중에서 고르라고 하셨다. 산타 할아버지가 그려진 양말 한 켤레를 집었다. 그리고 몇 계단을 내려가 오늘 저녁에 등심 한 근을 사가지고 귀가 하시기를 비는 마음으로 할아버지의 사각 돈 통에 오백 원 동전 하나를 놓았다.


구걸을 하시는 장님 할아버지께서 커피를 사셨든 양말을 파는 할머니께서 커피를 사셨든 그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계단을 지나는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으로 할아버지는 도움을 받고 할머니는 양말을 판다.

구걸하는 사람과 노동하는 사람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남성과 여성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고가는 군중 속에서 함께 캔 커피를 마시는 아름다운 천국을 일군 것이다.

 

요한은 주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하셨다. 나에게는 장님 할아버지와 양말장수 할머니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이 있겠는가?!

무거운 부끄러움이다.

오늘의 독서는 말씀하신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 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__필립비;4,6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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