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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공현대축일 "동방박사들의 모습" -구요비신부님
작성자박광용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05 조회수659 추천수3 반대(0) 신고
 
 
    동방박사들의 모습

 

   해마다 성탄 시기에 우리가 묵상하는 ‘동방박사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신비스러운 내용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요즘으로 따져보면 과학자, 더 구체적으로는 천문학자인 듯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학문(과학)의 세계는 실재하는 모든 (자연) 현상을 관찰, 실험, 분석하여 그 안에 있는 보편적인 원리를 규명합니다. 여기에서 아비켄나는 “각 사물의 진리란 그 사물에 설정되어 있는 그 존재의 특성”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성의 진리를 찾던 박사들이 어떻게 유다인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마태 2장 참조)을 알아보는 신앙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인간의 육체성과 연대한 물질 세계가 하느님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곧 우주 만물은 신비로 감싸고 하느님의 계시(에페 3,3 참조)가 되었으며 ‘신의 암호’가 된 것입니다.

  “하느님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에페 4,6).

 

   박사들은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요한 1,14)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나선 구도자요 순례자의 전형입니다.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그런데 왜 선택된 백성인 유다교의 지도자들과 예루살렘 시민들은 메시아가 태어난 것을 알고서도 경배하지 않은 걸까요? 무엇보다도 그들은 현세적인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즉, 자기 나라와 백성을 주변의 강대국들에게서 보호해 줄 힘 있는 군주를 더 바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처럼 작은 고을에서 태어날 어린 왕자, 힘없는 사람들을 섬기러 육화한 ‘연약하신 하느님’을 거부한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서도 드러납니다.

   얼마 전 황우석 교수를 위시한 이른바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분들의 연구논문 관련 사건에서 보인 자세들이 그렇습니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혹을 제기하고 객관적이고 검증된 연구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국익에 도움이 된다거나, 경제부과 효과가 크다는 이유 등등으로, 그 진위를 제대로 살펴볼 생각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이런 광기들에 무서운 전율마저 느낍니다.

 

   객관적으로 엄연한 진실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각자 편협한 가치관을 진리의 척도로 삼아 고수하려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유다인들의 비극을 봅니다. 이런 혼란 중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얼마나 복음의 정신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서 이런 사건들을 관찰, 판단하고 실천하였습니까?

 

   각자의 자세를 돌아보면서도 낙담하지 않고 이 사회의 앞날에 희망을 품는 것은, 그 일방적인 여론의 위력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규명하려고 애쓴 소수의 깨어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런 창조적인 소수에게서 동방박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2006년 1월 8일자 복음 묵상, 현 시점에 맞게 문맥을 약간 교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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