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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비의 교리인 성체성사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08 조회수586 추천수3 반대(0) 신고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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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교리인 성체성사

5년전 뉴욕타임스에 가톨릭 신자들의 성체 이해에 대한 설문조사가 실렸었다. 50% 정도의 신자들이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심을 믿는다고 응답했다. 나머지는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응답하였다. 이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 신자들은 어떻게 답할까? 미사 중에 사제가 빵을 축성하면 예수님의 몸으로 변화된다고, 또 포도주와 물을 섞어서 축성하면 예수님의 피로 변화된다고 정말 믿는가? 확실히 믿는가? 설문조사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믿기 힘들다고 응답하는 신자들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사에 참례하는 모습에서 어느 정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질문을 해보자. 과연 성당의 감실 안에 모셔진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확실히 현존하신다고 정말 믿는가? 확실히 믿는가? 이에 대한 응답에도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만일 신자이면서 이에 의심을 가지고 있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헌장 제11항에 분명히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의 원천이요 그 절정이 성찬례다”라고 정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체성사 안에 우리 신앙이 요약되고 집약되므로 이를 부정한다거나 의심한다는 것은 신앙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만일 미사 때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하여 영적 양식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믿으면 우리의 미사참례 태도는 달라질 것이다. 더 많은 준비를 한 후 미사에 임할 것이 분명하다. 또 감실 안에 모셔진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것을 의심치 않고 믿으면 우리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면 성당에 자주 오고 싶어할 것이고, 볼일이 있어서 성당에 왔을 때에는 우선 성전에 들어가서 감실 앞에 나가 무릎꿇고 기도할 것이다. 살아 계신 주님께서 거기에 계시기 때문이다.
신비의 교리 미사중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한 다음 신자들에게 성체를 주기에 앞서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라고 말하면 신자들은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성체를 모시려고 나아간다. 비신자들이 이 광경을 보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물론 이성적 논리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어떻게 빵이 몸으로 변했다고 믿고 그 빵을 받아먹으려고 눈을 지그시 감고 나가느냐고 빈정댈 것이다. 어떤 이들은 웃기는 얘기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몸이라고 분명히 신앙으로 믿고 모시러 나간다. 빵이 예수님의 몸으로 바뀐다는 것은 신비의 교리다. 이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이 신비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믿기 위해서는 신비한 방법이 요구된다 하겠다. 즉 성령께서 비추어주셔야만 이 신비를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다. 성 토마스는 성체 찬미 기도에서 “두 가지 허울 안에 분명 숨어 계시오나 우러러 뵈올 수록 전혀 알 길 없사옵기에 내 마음은 오직 믿을 뿐이오이다. 보고 맛보고 만져봐도 알 길 없고 다만 들음으로만 믿음 든든하오니…”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나를 먹는 사람은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알아듣기 힘들어서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이가 예수님을 떠나갔다. 심지어 우리더러 식인종이 되란 말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가겠느냐?”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요한 6, 67―68)라고 대답하였다.

그리스도 현존의 양면성 예수님께선 왜 성체성사를 세우셨을까?
다름 아닌 사랑 때문이다.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제물로 봉헌하신 사랑도 모자라 그 은혜를 계속 나누어주기를 바라셨다. 이젠 자신의 몸을 부수어 우리에게 영혼의 양식이 되고자 자청하셨다
. 그러므로 미사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흠앙해야 한다. 예수님께선 우리의 영혼에 양식으로 오신다. 또 감실 안에 계시면서 언제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고자 기다리신다. 그러므로 자주 미사에 참례함은 물론 성체조배, 성체강복, 성시간에 자주 참석하여 주님을 찬양해야겠다. 그러나 다른 한 면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예수님은 성체 안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가난한 자, 병든 자, 고통 당하는 자 안에도 계신다. 그러므로 성체께 대한 정성을 드리는 만큼 그들에게도 그러한 정성을 드려 예수님을 찬양하도록 해야 한다.

오늘의 세계는 물질 우선의 세계다. 옛날에는 신 중심의 신본주의 사회였다. 그러다가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인간 중심의 세상이 됐고 이젠 물질 중심의 세상이 되었다. 하느님도 뒷전이고, 인간도 경시되고 있다. 물질을 위해서는 인간의 생명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살아 계시는 주님으로 받들어 모시는 혁명적 신앙을 가져야 한다.
어떤 이들은 흔히 역사상의 예수님만을 강조한다. 과거 2000년전의 예수님만을 공부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 계신다. 오늘날의 예수님, 살아 계신 예수님은 오늘도 성체 안에서, 고난받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그분을 만나야만 우리의 신앙은 살아있는 신앙이 되는 것이다. 주님의 목소리를 감실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들어보자. 성체 안에서 우리의 방문을 기다리시는 그분께 우리는 무슨 이야기라도 다 드릴 수 있다. 그분은 나의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 최기산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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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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