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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 9일 야곱의 우물- 마르 6, 45-52 묵상/ 완고한 마음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09 조회수528 추천수5 반대(0) 신고

완고한 마음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마르 6,45-­52)
 
주영길 신부(청주교구 봉방동 천주교회)
◆가끔 이런 성찰을 해본다. ‘나는 과연 누구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진지하게 고려하며 사는가?’ 타인의 마음에 대한 고려란 흔히 말하는 타협이 아니다. 내 뜻대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를 배려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그럴 마음이 없다. 이제껏 혼자만의 방식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무엇을 먹을까? 당연히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다. 어떻게 처리할까? 내가 이미 결정한 대로다. 마음에 안 드는 상대방을 어찌할까? 거룩한 무관심으로 일관하면 된다. 암덩이가 커가듯 내 안에서 나도 모르게 ‘완고함’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나이와 함께 고집만 남는다.’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다. 이미 자기의 세계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좋게 표현하면 인생철학이 뚜렷한 것이다. 일생을 살아온 ‘노하우’라 할까? 몸의 노화가 시작되면 눈이 침침해진다. 그만큼 시야가 좁아진다는 증거다. 또 귀도 들리지 않는다. 이제껏 자신이 생각해 온 바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이 ‘완고한 마음’이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의 완고한 마음을 전한다. 앞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새벽녘에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너나 할 것 없이 유령이라 생각하고 아우성을 쳤다. 이제 모두 죽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복음사가는 이 사건을 보고 이렇게 덧붙인다.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6,52)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보고도 그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청소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핀잔을 주었다. 아무리 설명해도 기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작동이 더디니 설명하다 말고 ‘어찌 이 간단한 것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세요?’ 하고 짜증을 부린다. 그러나 남 얘기할 때가 아니다. 나도 내가 사용하는 휴대전화의 여러 기능을 소화하지 못해 단순히 통화만 하거나 짧은 문자만 보낼 뿐이다. 타인의 완고함은 허물처럼 보이고, 왜 내 완고함은 당연하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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