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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현 존 . . . . . . .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09 조회수710 추천수12 반대(0) 신고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왜 그분은 굳이 그런 기적을 일부러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을까?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유령인줄 알고 공포에 질려 소리를 쳤다.

   이것은 때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공포를 가져다 주는 분임을 가르쳐준다.
   두려움과 공포는 다르다.
   두려움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실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지만,
   공포는 바로 눈 앞에 펼쳐진 실체에 대한 구체적인 두려움이다.

   놀라운 현상,
   어쩌면 겁에 질려 소리치고 끔찍한 느낌마저 드는 상황의 한 중간에
   바로 그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제자들이 맞바람을 맞고 배를 저어나간 것은 저녁때부터였고,
   예수님이 그런 제자들에게 다가간 시간은 새벽 네시쯤이라고 한다.
   통상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 정도쯤 되면 대체로 안되겠다고 포기하고 배를 돌리게 마련이다.

   때문에 이 상황은 설정된 상황이다.
   우리가 가야 하는 인생길을 비유한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우리 인생에서 만난 어려운 현실을 비유한 것이다.

   제자들이 처음에 바라본 것은 매서운 바다였고,
   그 다음에 본 것은 유령이었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보았다.

   매서운 바람,
   즉 어려운 현실만 바라보면 그 속에 메몰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유령만 보고 말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제자들도 유령만 보고 말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유령앞에서 무너지고 말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끔찍한 사고 현장에서도 예수님은 그들 바로 곁에 계셨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사에 무관심하거나 멀리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끔찍한 사고 현장에서도 예수님은 계실 것이고
   그 장면을 지켜보고 계실 것이며,
   어쩌면 오늘 제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어려운 현실을 보고 다가오시면서도
   당신이 단도직입적으로 우리의 현실을 장악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 속에 당신이 계심을,
   그래서 우리들이 당신을 발견하길 바라신다는 사실이다.

   원망스럽지만...
   예수님은 현실 속의 우리들에게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당신 현존을 보여주신다.  “나다!”

   그분은 구약의 하느님 이름을 말씀하신다. 

   “나다!”

   있는 자,
   스스로 있는 자,
   본래부터 있는 자,
   그래서 다른 모든 것을 있게 한 자,
   그가 바로 하느님이시다.

   예수님은
 
  “나는 있는 자, 그” 라는 뜻을 가진 야훼 하느님의 이름을 발설하신다.

   어두운 현실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계시는 예수님을 찾아내야 함을 가르쳐준다. 

   이천 화재사고 현장에서도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고 그분께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분명 그분과 함께 바람이 멈춘 배를 타고 있을 것이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단지,
   우리를 당신 멋대로 다루지 않으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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