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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8) 가장 가까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데?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10 조회수636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03년 12월 18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ㅡ예레미야23,5-8;마태오1,18~24ㅡ

 

      (8) 가장 가까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데?

                                   이순의

                                           


 ㅡ인간의 이중성ㅡ

늘 주님을 어떻게 믿고 실천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어떤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 해답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에게 최선을 다 하는 것이 가장 잘 믿고 잘 실천 하는 거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위해 사는 법에 대해 항상 준비하고 열려 있었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딱히 세상의 굶주림을 절박하게 체험 해 보지 않은 여인은 장애자들을 찾아다니고 자원봉사도 하면서 열심히 하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것이 힘들기 보다는 보람되고 모두가 좋은 일이라고 여기는 일을 하는 기쁨이 더 컸으니까요.

 

그런데 천사 같은 그 여자가 결혼을 했습니다. 진짜로 가난하고 못 배우고 장남에 홀시어머니에 시동생들에 모두가 못 사는 친척들까지 주렁주렁한 집에 시집을 갔습니다. 하느님을 잘 믿는 그 여인은 가난은 열심히 일 하면 물릴 수 있다고 생각 했고, 배움은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 했고, 자기가 사랑하면 가족들은 잘 지낼 거라고 확신 했습니다. 그런데 100원을 벌면 110원이 없어지고, 나이 30 넘은 남편을 가르친다는 것은 절벽을 오르는 것만큼 어려웠고, 시어머니의 심성은 순하시나 세상살이 해쳐가는 지혜가 둔탁하시고,  생활비는 없는데 동생들은 찾아오고, 친척들은 명색이 큰며느리라고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그들이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고 여겼습니다.

 

궁할 때는 급한 대로 친정어머니께 도움을 청하기도 해 보지만 출가외인이 되었다는 건 자원봉사 하던 시절과 달랐습니다. 한강물에 돌 던지기요, 근심의 원천이며, 한계의 극치였으니까요. 거기다 사고치는 시동생은 말을 안 들어 먹어서 큰집도 들락거리고, 시집올 때 가져온 것들을 되는대로 다 팔아보지만 어림도 되지 못 하고. 거기다 모두가 배운 것이 없으니 독립해 나가지 못하고 형인 남편을 도와서 생계를 꾸리며 살아갑니다. 믿음이 좋았던 여인은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어도 그 책임감들이 족쇄가 되어 짓누르기 시작 했습니다. 그만 살고 싶었습니다. 봉사자의 삶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런데 혼인성사로 맺어진 깰 수 없는 주님의 법이 굴레가 되었습니다. 친정어머니를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희망이 없고 한계가 없으니 다시 자원봉사자의 삶을 선택하겠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너는 장애자한테도 봉사 했는데 저 사람은 멀쩡하지만 인생이 장애자 이니까 저 사람도 장애자라고 생각하고 살아 보거라."하시고 가 버렸습니다. 다른 친정어머니와 너무나 다른 어머니셨습니다. 이 여인은 정말로 가까운 이웃을 돕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변화되어야만 했지요. 그건 자기 자신이 철저하게 남편이 되어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자기의 모든 과거를 잊어버리고 이제부터는 친정의 도움도 끊어버리고 더 이상의 현실은 없다고 마음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그 여인은 지금 그렇게 몸부림하면서 버텨온 가장 가까운 이웃을 등지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알아버렸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억척을 부려서 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인간의 힘으로 절대로 되지 않는 신이 주신 운명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후회 했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정말로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렇게 살지 말 것을.........


제 자식에게 장난감 하나를 사주지 못 해서 고급아파트의 쓰레기통을 뒤져다가 방안 가득 고급 장난감으로 채우던 일! 학습지 할 돈을 아끼려고 300원짜리 스프링공책을 사다가 아이가 잠든 저녁 내내 열심히 학습지를 만들던 쓸쓸함! 구두 한 켤레 값을 아끼려고 바자회에 가서 500원짜리 멋진 구두를 신고도 발에 너무 잘 맞는 것에 감사했던 기쁨! 새벽에 전화벨 소리에 놀라 아이를 들춰 업고 파출소로 달려가니 만취한 시동생은 파출소장의 책상을 부수고! 포승줄에 묶여 나와 재판정에 설 때 가족의 얼굴을 찾아 뒤돌아 볼 시동생을 위해 잠든 아이를 깨워 새벽차를 타야 했었던! 장가를 가준 것이 고마워 아이 낳는 동서들에게 산후 조리 해 주면서 어머니께 받아보지 못한 어른으로서의 도리에 대한 정성! 등등등

 

이 모두를 허무 해 하고 있습니다. 봉사의 삶은 자선으로 끝남으로 책임에 대한 추궁이나 끝없는 부족함을 느껴야 하는 절망감은 없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들이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고 살아도 되거나, 아이들을 사교육비를 들여서 조기에 학원을 보낼 수 있거나, 그 여인보다 더 비싼 집을 살게 되는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에게 중요한 것은 남편의 거듭된 실패로 어머니께도 동생들에게도 더 많은 것을 해 줄 수가 없는 맏며느리의 현실이 힘겨웠습니다. 이제는 가진 것이 없는 부족함을 쪼개서 그들에게 베풀어 주고 싶은 마음도 없어 졌습니다. 가엾은 그의 자식이 컸고, 그 자식에게 해줘야 할 것이 많아졌고, 해 줘야 할 때가 되었으며, 더 많은 후회를 남기기 전에 제 자식에게도 그렇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격고 있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갈등은 또 신앙 안에서 왔습니다.

 

그렇다면 시어머니는 어찌 할 것인가? 어머니의 단칸방과 합하여 방을 늘리고 함께 살아 볼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아직 혼인 하지 않은 늙은 자식과 함께 동행 하려 하실 것은 당연한 이치이며, 자식을 가져 본 여인의 입장이 되어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가진 돈이 적어서 집이 너무 좁을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이 지고 가야만 하는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느꼈습니다. 그 여인이 손을 뻗기만 하면 모두가 짐이 되어 너울너울 활개 치는 장남 며느리인 것입니다.

신은 그 여인에게 선한 신앙은 주셨으나 그녀의 가시밭 인생을 도와 줄 필요한 조건들은 그녀가 절망하기에 급급할 만큼만 주신 것 같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대림시기에 자선 주간을 보내면서 우리가 일상 안에서 부딪히는 한 여인의 삶을 예로 들어보았습니다. 이 여인은 자식을 가르쳐야 할 중요한 시기를 맞이함과 동시에 어머니를 어떻게 해 드릴 수 없어서 반 지하 방에 그대로 방치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이 여인의 이중적인 신앙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칭찬을 할 것입니까? 돌을 던질 것입니까? 그 여인은 현재 자식의 도리를 잠시 접고 있습니다. 아들에게 남편과 같은 무지와 가난과 짐을 지워줘서는 안된다고 생각 합니다. 아들에게 공부를 시켜야 하는 돈을 아끼면서 까지 어머니를 잘 모시는 것은 어쩌면 지금 그녀가 하고 있는 후회 보다 더 큰 후회를 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훗날 여인의 자식이 여인을 어머니처럼 방치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지만 부모의 의무는 지금 당장 자식을 교육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자식의 운명이 시댁의 운명으로 되 물림 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자식에게 멍에를 벗겨 주고 싶을 뿐입니다. 그 멍에를 어미가 벗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신의 입장에서 보면 착각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세상을 향해 입을 닫았고 귀를 막았습니다.

 

임신한 여인과 결혼하는 요셉에게 유대인들은 칭찬을 했을까요? 돌을 던졌을까요? 요셉은 세상을 향해 입을 다물고 귀를 막고 주님의 음성만 듣고 때를 기다리며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요셉이 생각하는 때가 아니라 주님께서 마련하시는 때를....... 기다리며! 우리는 대림시기를 보내면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인간 개인 개인이 격고 있는 수없이 많은 경우의 이중성에 대하여 성찰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성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이중성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사함을 받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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