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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12) 사랑을 배운다는 것은 말이야.......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14 조회수472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3년12월21일 대림 제4주일  ㅡ미가5,1-4;히브리10,5-10;루가1,39-45ㅡ

 

 (12) 사랑을 배운다는 것은 말이야.......

                                 이순의

                                        

 ㅡ사랑의 아픔ㅡ

나는 나로 인해서 상당히 난감 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멀게는 신부님이나 수녀님들부터 가깝게는 친구와 친척, 그리고 가족과 남편까지 나를 알고 있는 방대한 수의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되면 알수록 사랑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자식을 제외한 내 주변에 머물거나 공유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사랑에 관한 공통된  불편 사항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걸 알면서도 그 열정의 사랑 법을 아직 고치지 못 하고 있다. 이제는 고칠 수 없는 신이 내게 주신 숙명의 달란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사람과 친해지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 하면서 살고 있다.

 

그건 한결 같고 정열적이며 타산 없는 맹목적의 가난한 최선을 다 해버리는 내 방식의 사랑 탓이다. 그런데 모전자전 이란 말을 누가 만들었을까? 그걸 그냥 아들놈이 쏙 빼 닮은 것 같다.

자식이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에 미리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일러 둔 게 있다.

"사람이 때가 되면 사랑이라는 공부도 해 봐야 여물어 가는데 그게 풋사랑일 경우에는 멋모르고 겁 없이 그냥저냥 넘어가야 하는 거야. 풋사랑에 목숨을 걸면 스무 살에 아빠 되고 스물다섯 살에 죽고 싶을 거야. 그러니까 풋사랑은 공부라고 해야지 직장이라고 목숨 걸면 인생을 종치게 되는 거야." 라고

 

그런데 올해 봄과 함께 사랑이라는 수업종이 울리고야 말았다. 나는 교장선생님이 되어 사랑이라는 선생님이 내 아들을 잘 가르치는지 교실복도에서 까치발을 들고 서서 감시하느라고 점심도 못 먹었다. 이제 겨울방학이 되면 모두 귀가 할 것이며 사랑이라는 수업도 드디어 종강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의 눈치를 피해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느라고 들어간 화장실은 피신의 은신처요, 쪽지 주고받는 컴퓨터는 뽑아야 할 자료가 쏟아지는 산 이런가 하더니, 갑자기 요 며칠 동안 휴대폰은 나뒹굴고, 컴퓨터는 꺼져 있고, 방문은 잠겨 있다.


어미의 직감이다. 수업도 끝나고 시험도 끝나고 이제 푹 자면서 지친 여독을 풀고 원기를 회복하기만 하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멋모르고 이별을 삼켜야 하는 아들은 잠만 자는데 가슴을 쥐어짜도록 절절한 눈물은 어미인 내가 흐르고 있다. 초록이 푸른 만큼 여름의 사랑은 풍성 했었다. 솜털 보송한 아들의 덩치를 보면서 대견함과 우려감이 교차 했다. 푸른 초록을 질투하는 바람처럼 자식의 풋사랑에 격려도 했다가 훼방도 놓았다가, 하늘색 면 남방셔츠에 진청색의 진 바지를 한나절이나 다림질하며 세상에서 내 아들이 제일 멋있게 광나야 한다고 욕심도 부렸다가, 근사한 선물 앞에서는 에미인 나도 받고 싶다고 살쾡이처럼 앙탈을 부렸다가....... 한 철이 지나고 두 철이 지나고 또 세 철이 갔다. 세상이 꽁꽁 얼어버린 동토의 계절에 사랑이라는 첫 수업이 끝난 것이다.

 

너무도 나를 닮아버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이라는 공부는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일러 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수업도 직접 해야만 하는 공부이며 또한 본인 스스로 그 시험에 응시 했을 때만이 학점에 후회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복음은 위에서 아래로 오심에 대하여 깊이 있게 선포 하고 계신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엘리사벳에게 오신 것이다. 두 어머니는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목이 잘려 죽어야 할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뜻을 이야기 했을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할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뜻을 이야기 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나도 아기를 가졌을 때는 풋사랑을 겪는 아픔에 대해 전혀 생각 하지 않았다. 느껴지는 태동이 신비로워 행복했고, 손가락이 열개 발가락이 열개가 분명해서 감사 했고, 쪽쪽쪽 잘도 빨아먹는 젖이 잘 나오게 하려고 돼지족발을 삶아 좋다고 먹었다. 자식은 매순간이 기쁨인 것 같다. 지난 시간도 행적도 소용없고 다가 올 시간도 사건도 소용없다. 지금 내 곁에 아직도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내 자식이 아무런 조건 없이 머물고 있는 그 사실로 흡족하고 보배롭다. 그런데 돌 여자 엘리사벳이 임신을 했으니 그 기쁨이 오죽 했겠는가? 아마 마리아께서 태중에 주님을 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기뻐했을 일이다.

 

구세주 예수와 마리아께서 선지자 요한과 엘리사벳에게 오신 이른 아침에 주일 미사 준비에 바쁜 아들에게 "너의 위로는 사람이 아니라 너의 마음 모두를 주관하시는 분이셔"라고 말해 주었다. 오늘 마리아의 방문을 받으신 엘리사벳은 성장의 입덧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 내 아들에게 오셔서 성숙이라는 출산을 기쁘게 준비하라고 마리아와 같은 축하와 격려를 전해 주실 것이다. 울보 어미인 나 보다 더 많이 축하 해 주시리라고 믿는다.

아들은 "알아요."라고 대답하며 성당에 갔다.

 

그 여자친구가 접어 준 종이학 백 마리가 날지도 못 하고 하트모양 유리병 속에 갇혀 있다.

"헛 소원 비느라고 고생 하셨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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