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절망은 없다" - 2008.1.18 연중 제1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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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08-01-18 | 조회수620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1.18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사무 상8,4-7.10-22ㄱ 마르2,1-12
"절망은 없다"
절망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전에 없는 단 하나의 단어는 ‘절망’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절대로 실망하지 말라.’ 는 베네딕도 규칙 4장 ‘착한 일의 도구는 무엇인가’에서
결론과도 같은 마지막 74절 말씀입니다.
오늘 새벽 성무일도 시편100장 5절에서 시편저자는 다음처럼 하느님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는 선하시고,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시며,
그분의 성실은 대대에 이르도다.”
이런 하느님께 대한 철석같은 신뢰가 인생 허무와 절망의 어둠에서 벗어나 밝고 힘차게 살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얼마 전 부패 권력에 맞서,
의롭고 외로운 투쟁을 하는
두 젊은 국회의원과의 인터뷰 기사의 마지막 대목이 일치했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대로 수행생활에도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진정 하느님을 찾는 구도자는 영원한 초보자요,
그에겐 영원한 시작이 있을 뿐입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했습니다. 믿음이, 사랑이, 희망이 간절하면 하늘까지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간절하고 항구히 믿으면 믿음의 하느님께,
간절하고 항구히 사랑하면 사랑의 하느님께,
간절하고 항구히 희망하면 희망의 하느님께 도달합니다.
이래서 하느님의 자비에 절대로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궁즉통(窮卽通)이라 했습니다.
막바지에 이르러 막힌 듯할 때, 문이 열리고 길이 열린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많은 군중으로 인해 도저히 예수님께 접근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서
중풍병자 동료들의 간절한 믿음의 눈은 그 문을, 길을 찾아냈습니다.
지붕에 구멍을 뚫어 문을 내는 기상천외한 착상입니다.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감동하신 주님의 즉각적인 사죄선언에 이어 치유선언입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
죄 사함에 따른 영혼의 치유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육신의 치유입니다.
동료들의 간절한 믿음 덕분에 영육의 전인적 치유를 받으므로
새 삶의 문과 길이 활짝 열린 중풍병자입니다.
바로 이런 간절한 믿음과 희망이
오늘 1독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결핍되어있습니다.
“우리를 통치할 임금을 정해 주십시오.”
참 임금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저하로 사람 임금을 세워달라는 이들의 요구입니다.
“백성이 너에게 하는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은 사실 너를 배척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배척하여,
더 이상 나를 자기네 임금으로 삼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들의 말을 들어 그들에게 임금을 세워주어라.”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듯이, 당신의 백성을 이기는 하느님도 없습니다. 결국 사무엘을 통해 백성들의 청을 들어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시행착오의 고생을 통해 배워가는 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 같기도 합니다.
마침내 사람 임금을 모심으로
사무엘 예언자가 그토록 우려하던 노예적 삶을 살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좋으신 주님은 자모이신 교회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영육을 치유해주시어 새 하늘과 새 땅의 오늘 하루를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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