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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어나 가운데로 나오너라'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23 조회수526 추천수3 반대(0) 신고
 <일어나 가운데로 나오너라>(마르3, 1-6)

 -유광수신부-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오너라.”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오늘 복음은 사람을 살리느냐 죽이느냐 하는 문제를 논하신다. 합당한 일을 하면 목숨을 구하는 것이요, 남을 해치는 일을 하면 죽이는 일을 하는 것이다. 목숨을 구하는 일이든 해치는 일이든 그 일을 하는 것은 손이다.

 

 따라서 우리가 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사람의 목숨과 관련되어 있다.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손이 성해야 하고 해치는 일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오그라든 손이 나을 것이다. 손은 하나의 연장 즉 도구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우리의 손도 오그라들 것이요, 우리의 마음이 건강하면 우리의 손도 활짝 펴질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과 손이 오그라들었기 때문에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어도 받지 못하는 오그라든 손을 펴주신다.

왜냐하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손을 펴주는 것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손이 오그라들었으면 아무리 많은 은혜를 베풀어 준다 하더라도 많은 은혜를 받지 못하고 흘러버릴 것이다.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하신 일은 모두 당신이 베푸신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손이 되도록 오그라든 손을 펴주신 일이다.

펴진 손은 이제부터 봉사하는 손이 될 것이고 목숨을 구하는 일에 사용할 것이다. 그것이 오그라든 손을 펴주신 예수님께 보답하는 일이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봉사하고 싶어도 손이 오그라 들었기 때문에 봉사하지 못했다.
 
 오늘 날 오그라든 우리의 손을 펴지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완고한 마음이다. 즉 손이 오그라들었다는 것은 마음이 완고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완고한 마음이란 자기의 고정 관념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럼 그가 오그라든 손을 펴기 위해서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첫째, 자기가 병자라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즉 내 마음이 완고하다는 것을 인정해야하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자기가 병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절대로 자기 병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우리가 아프면 의사 앞으로 가야하듯이 내가 병자라는 것을 알면 치유자이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한다. 즉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야훼 하느님은 모세를 부르실 때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다. 신은 더러운 것으로 간주되었다. 집 안에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벗게 되어 있다. 이처럼 거룩한 장소에 들어갈 때 신을 벗는 것은 마땅한 예의이지 존경의 표시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이슬람교인들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사원에 들어간다. 또 다른 의미는 발은 인체에서 가장 더러운 부분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신을 벗은 맨발은 인간의 약하고 추한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숨김없이 하느님 앞에 드러낸다는 겸손한 마음의 표시이기도 하다.

 

 사실 모세에게는 남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은 면이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 이집트 공주의 아들로서 자신만만하게 살아가다가 좌절을 맛보아야 했던 참담함, 동정을 베풀었던 동족에게 배반당한 분노, 한 때는 민족을 위한다는 정의감에 불탔지만 이제는 잊혀진 채 외딴 곳에서 그저 자기 한 목숨만을 부지하면서 해야 했던 자신의 무능함 등이 그것이다.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하신 말씀에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많은 과거의 상처, 분노, 무능함 등을 마음 속에 묻어두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모세에게는 쓰디쓴 과거이지만, 하느님은 바로 거기에서 좋은 것을 이끌어 내신다. 즉 모세가 겪은 실패와 쓰라림은 세상과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과 모세 자신의 한계를 깨닫도록 하기 위한 쓴 약이었으며, 모세를 당신 일꾼으로 쓰기 위해 단련시킨 내밀한 준비과정이다. 아담아 어디 있느냐? 라고 물었을 때
“당신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라고 했던 아담이 치유 받으려면 빛이신 하느님 앞으로 나와야 한다. 야훼 하느님 앞으로 나오는 것은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는 것이다. 나를 하느님 앞에 나오지 못하고 숨어있게 만든 죄를 숨기지 말고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한다. 나의 손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죄를 숨기면 점 점 더 깊은 병이 될 것이다. 아니 점 점 나의 손이 오그라 들 것이다. 

 

 죄는 좋은 일과 남을 해치는 일이 무엇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정신을 흐리게 한다. 죄는 우리의 올바른 의지를 약하게 만든다. 죄는 경쟁심을 유발시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하게 만든다. 죄는 목숨을 구하는 일보다는 죽이는 일을 행하도록 부추긴다. 죄는 선을 악으로 악을 선으로 혼돈하게 만든다.

 

 그래서 죄의 노예가 되면 누구나 정상적으로 행할 수 있는 좋은 일, 목숨을 구하는 일 대신에 남을 해치는 일, 죽이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내 몸 속에는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여 싸우고 있는 다른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법은 나를 사로잡아 내 몸 속에 있는 죄의 법의 종이 되게 합니다."(로마 7, 23) 라고 고백하였다.

 

 그렇다면 나를 사로잡고 있는 죄는 무엇인가? 내 영혼을 병들게 한 나의 죄는 무엇인가? 나를 나병 환자로 만들고 중풍 병자가 되게 한 나의 죄는 무엇인가? 나의 마음과 정신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그 죄의 뿌리를 찾아 내어 예수님께 말씀드리자. 예수님은 그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써 오그라든 나의 손과 마음을 활짝 펼 수 있게 해주실 것이다. 이미  손뿐 아니라 전신이 마비되어 들것에 들려 온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 해 주심으로써 일어나 걸어가게 해주시지 않으셨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오너라."하셨듯이 우리도 나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일어나 사제 앞에 나아가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인간은 여러 가지 손을 가지고 있다. 악의 손도 있고 선의 손도 있다.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손은 반역의 손이다.

 

-질투의 불길 때문에 자기의 혈육인 동생을 죽인 카인의 손은 살인의 손이다.

 

-은 30냥에 눈이 어두워서 스승인 예수님을 팔아먹은 유다의 손은 배신의 손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던 무리의 손은 폭력의 손이다.

 

-예리고를 가다가 강도를 만나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간 사제나 레위 사람의 손은 오그라든 손이다. 반면 그 강도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간호해 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손은 선한 손이요, 봉사의 손이요, 활짝 펴진 손이다.

 

-나의 손은 어떤 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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