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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대의 표징을 읽고 변화를 이끄시는 분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27 조회수451 추천수3 반대(0) 신고
 
 
 
 
 

<시대의 표징을 읽고 변화를 이끄시는 분> ... 윤경재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마태 4,12-17)



우리는 흔히 ‘인생무상 세월무상’을 입버릇처럼 가볍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본래 뜻은 그저 염세주의나 비관주의가 아닙니다. 이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표징을 읽을 줄 알아야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요한의 죽음을 그저 한 개인의 죽음으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빛이 온 세상으로 펴져 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보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유대 지방, 유대 민족에게 회개를 선포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가 이 세상에서 죽음으로써 유대 민족에게만 회개를 선포할 것이 아니라 이방의 땅에까지 회개 그리고 덧붙여 복음이 선포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줄곧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정지하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일은 다 움직이며 변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간 공간이라 표현하지만 거기 그대로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은 변하는 것을 모르고 변화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매달려 있으려고만 합니다. 변화를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불교에 밀이(密移)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물이 은밀하게 움직여 간다는 말입니다. 우리 몸도 머무르고 있는 것 같지만 몸속의 피는 돌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실은 지구도 엄청난 속도로 태양을 돌고 있습니다. 우리의 어제와 오늘은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숨으로 태울 것을 죄다 태워야 사는 것입니다. 섭취한 음식물과 공기, 심지어 영혼까지도 죄다 태워야 사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원한 미래와 과거 사이에 여기서 접촉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는 과거와 미래의 접촉점입니다.  그 한 점은 미래를 향해 달음질치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보면 산다는 것은 ‘여기’라는 한 점에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찾아야할 것이 바로 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놓쳐버린 과거에 집착할 이유는 없으며 아직 도착 하지 않은 손님인 내일에게 손을 내밀 필요도 없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만이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살아 있다는 것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모두 공짜로 주어 졌으며 누군가의 덕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만물과 자연도 다 서로 누군가의 덕분으로 살고 있다면 최종적으로 그 누군가는 하느님이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됩니다.


“여기, 이제”가 해결 되지 않고서는 정주가 없는 인생은 언제나 신비이며 의심 덩어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여기 이제”의 문제를 예수님께서 선포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요한 5,25)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요한 4,23)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지금 즉, “여기 이제”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십니다. 당신이 계신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표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는 말씀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살아 있는 것이 하늘 나라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하늘 나라를 미래에 유보하고  되는대로 막 살아 갈 것이 아니라 지금에 당도한 것으로 알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깨달음과 실천이 바로 회개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회개 요청 보다 예수님의 말씀이 더 힘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차이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언이야 말로 지금 여기를 충실히 살라는 요청이며 이런 것은 모두 세상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알아지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지금 여기’가 중요할 수 없습니다. 늘 그날이 그날 이라면 귀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변하기 때문에 지금 여기가 귀한 줄 깨닫는 것이며 우리는 그 소중한 보물을 열심히 아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 점이 바로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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