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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돌아갈 곳이 있는....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03 조회수456 추천수10 반대(0) 신고

 

 

물을 좋아하는 엄마를 모시고 

저수지에 함께 갔다.

 

병원을 건넌방 드나들듯 하는 요즘

입맛도 없고 사는 맛도 점점 잃어가시는 것같다.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밥집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고 걷기로 했다.

 

 

 

 

 

요즘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

갑자기 무섭게 추워졌다가는 슬며시 풀어지곤 한다.

 

엄마의 요즘 상태 같기도 하다.

모든 것이 노엽기도 하고 슬며시 힘이 풀려 모든 것을 체념하기도 한다.

 

엄마도 우리도 마음 속에서는 벌써 정리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누군가 그것을 기정사실화 하면 많이 섭섭하신 것 같다. 

 

자식들에게도 생전 깔끔하고 예쁘게 단장한 모습만 보였던 엄마였다.

항암치료로 머리가 빠질까봐 그것이 걱정이시라고 해서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병이 위중한데 그까짓 용모나 옷차림 따위에 왜 신경을 쓰나 싶어

무심코 한마디 했다가 노염을 풀어 드리느라 혼이 났다.

 

이젠 다 틀렸으니, 이젠 다 끝났으니

아무 것이나 입고, 아무렇게나 대충하고 사는 것이 싫으신 거다. 

 그 마음 깊이를 헤아리지 못해서 잠시 마찰이 생겼던 거다.

 

울 엄마는 나하고는 조금 다르다.

엄마는 엄마의 스타일로 끝까지 사셔야한다고 나도 마음을 바꿨다.

 

나는 여자는 여든이 되어도 여자라는 말을 그래서 하는가 보다고 받아들였는데.

엄마에게는 여자니 아니니 하는 문제가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좀더 근원적인 문제도 있었다.

 

"나, 아직 안 죽었어" 하는.......

 

이 날은 요즘의 유행 스타일로 모피코트를 리폼하고.

곁들여 머리에 쓸 모자도 맞추셨다. 

 

"겨울도 얼마 안 남았는데 저걸 언제 입으실거라고, 저리 큰 돈을 들이실까?" 싶었지만,

다시 생각하니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가끔은 푸념처럼, 이제는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쓴 웃음을 웃으신다. 

여든이 되었다 해도 생의 끈을 놓는 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누구나 연세를 묻고는 그럴 만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면

슬프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그런가 보다.

하기야 죽음의 문제가 어디 그리 받아들이기 쉬운 일일까?

 

더 살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죽음이 무섭다고 하신다.

죽음 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아픈 것이라고 하신다.

아파야 죽는 것이 당연한데, 

얼마나 아프다 죽을 것인지 그것이 두렵다고 하신다.

 

하기야 노인이라고 아프지 않을까?

죽음이 가까와졌다고 두렵지 않을까? 

 

 

 

 

 

철새들이 얼음 위에 줄줄이 앉아있다.

물 속으로 들어가 헤엄도 치고, 

하늘로 올라갔다 내려앉았다 하느라고

연신 끼륵끼륵 소리를 지른다.

 

저들도 얼마 안 있어 이 저수지를 떠날 것이다.

아니, 저들의 갈 곳으로 이미 가고 있는 도중이다.

지난 여름의 무성했던 연잎들도 모두 자기 갈 길을 가고 없다.

 

울 엄마도 또 나도,

언젠가는 자기 갈 길로 떠날 것이다.

이승에서 엄마로 자식으로 만난 인연이

저승에서 다시 이어질 수 있을까? 

 

...............

 

나도 지금부터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엄마를 보면서 부쩍부쩍 들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평소에 다짐을 하고, 준비를 해도

막상 죽도록 아프고, 아파 죽어가는 일에 닥치면 어찌 될지 모른다.

제발 죽을 만큼 아프지는 말고

어느 날, 잠자듯 떠나는 행운이 오기만을 빌 뿐이다.

 

 

툭터진 저수지를 보며 예전의 모습으로 잠시 돌아가서 즐거워하셨지만,

결국은 바람이 차서 마스크를 한 채, 몇걸음 걷지도 못하고

차에 들어가서 조금 있다가 바로 돌아와야 했다.

 

엄마의 모습은 얼마 후의 내 모습이다.

그래서 어떤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마음에 담는다.

그 어떤 것 하나도 함부로 말할 수가 없다.

 

죽음을 앞에 두고는 

그 어느 때보다 삶이 진지해진다.

 

 

 

2008. 1월 마음까지 겨울이었던 어느 날에....

 

 

 

 

 

 

 

 

 

 

 

 

 

To Traino - Haris Alexi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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