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의 현존(現存)이자 성사(聖事)인 인간" - 2008.2.11 사순 제1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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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08-02-11 | 조회수425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2.11 사순 제1주간 월요일
레위19,1-2.11-18 마태25,31-46
"주님의 현존(現存)이자 성사(聖事)인 인간"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문득 떠오른 게 날실, 씨실로 짜여 진 천이었습니다.
날실 없이 씨실만으로는, 또 씨실 없이 날실만으로는 천이 짜여 지지 않습니다. 성경책도, 우리 인생도
하느님 세로의 날실과 인간 가로의 씨실로 짜여 진 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 미사와 성무일도를 통해 튼튼해지는 하느님 날실에
일상의 삶이라는 씨실로 짜여 지는 우리 삶의 천이자 삶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는 그대로 하느님 날실에 인간 씨실로 이루어진 한 조각의 천 같습니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는 말씀의 세로 날실에 이어, 가로의 이웃 사랑의 씨줄 말씀들, “...안 된다.”라는 금령들이 계속되고,
“나는 주님이다.”
네 번이나 나오면서 하느님의 세로 날실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로 결론을 맺습니다.
요약하면 하느님의 거룩함이라는 세로 날실과 이웃 사랑의 가로 씨실로 이루어진
독서 말씀은 그대로 성경의 요약이자 우리 삶의 요약과도 같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실재임을 깨닫습니다. 날실 없는 씨실을, 씨실 없는 날실을 상상할 수 없듯이, 하느님 없는 인간을, 인간 없는 하느님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오늘 날의 문제는
하느님 날실이 빠져있는 씨실만의 기형적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믿음의 영성(靈性)이란 씨실 빠지고 사람만 남으면
사람은 수성(獸性)의 짐승이나 마성(魔性)의 악마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최후 심판의 잣대는 구체적으로 곤궁 중에 있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곤궁 중에 있는 이들과 자신을 동일화하는 주님이십니다.
특히 가난하고 약한 이들 안에 숨어 계신 주님이십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이 맞아 들였다.
또 내가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언제 그랬느냐는 의인들의 물음에 대한 주님의 답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곤궁 중에 있는 이들 안에 숨어 계신 주님이십니다. 이런 이들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 주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주님의 성체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은
역시 주님이 그 안에 계신 사람 성체를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 안에 계신 주님이십니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
바로 주님의 성사(聖事)요 현존(現存)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현존, 바로 이게 인간 존엄성의 근거입니다.
오늘도 이 은혜로운 미사를 통해
우리와 함께 사시고자 말씀과 성체를 통해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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