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해 신부(마산교구 장애인 복지관장)
◆퇴근해서 기숙사로 돌아오면 방문을 열기 전에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조그맣게 ‘야옹’ 하는 소리가 들리면 흐뭇한 마음으로 문을 엽니다. 귀여운 야옹이가 다리 사이를 오가며 얼굴을 비벼 댑니다. 문 앞에 앉아서 기다리는 것을 보면 주인을 알아보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간식거리를 밥통에 담아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먹는 데 열중합니다. 아무리 부르고 옆에서 집적거려도 본체만체합니다.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어 오릅니다. 간식을 주는 사람은 무시하고 간식 자체만 탐식하다니 역시 고양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대를 기적이 필요 없는 시대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기적 없이 사람의 힘, 과학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학이 가져다준 물질의 풍요로움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음을 깨닫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더욱 하느님께 깊이 안기는 신심 깊은 신앙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느님을 갈구하는 신앙을 악용하는 잘못된 신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신앙인의 선의를 악용하여 교회가 금하는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르고 과대광고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과대선전의 한 방법으로 이른바 ‘기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모상에서 눈물이 흐르고, 성체가 하늘에서 떨어지기도 합니다. 분위기와 군중심리에 의해 사람들은 마술처럼 꾸며진 ‘거짓 기적’을 믿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믿는 차원을 넘어서 열렬한 신봉자가 되고, 스스로 전도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정작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분은 한 분이신 하느님임을 잊고 ‘거짓 기적’을 보여주는 사이비 교주를 믿고 따르게 됩니다. 그야말로 간식을 주는 주인은 모르고 간식 그 자체에만 매달리는 고양이와 같아집니다.
기적을 베푸시고, 신앙인을 구원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구원과 기적의 하느님께 신앙인을 올바로 이끄는 역할은 오롯이 교회에 맡겨졌습니다. 교회에 순명하지 않고 ‘거짓 기적’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자는 하느님보다 자신이 더 크다는 오만에 빠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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