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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관심이 '나주'를 만든게 아닐까 ? [본론편 3]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2-28 조회수436 추천수2 반대(0) 신고
 
 
한국 사람의 저변에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기층문화의 한 부분  =  샤머니즘
 
 
 
그리스도교 신앙 = 삼위일체 하느님 신앙
 
그리스도교, 가톨릭 신앙에 샤머니즘이 침입되는 것은 거의 막을 수는 있지만,
 
 
 
마리아 신심 행위(마음과 행위)에
 
한국 샤머니즘의 기층문화가 침입되는 것은
 
그동안 파악해 왔으며
 
또한 막아 왔는가 ?
 
 
 
만일 마리아 신심 + 샤머니즘 문화사상이 결합되어 지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게 되는지 그리고
현재 그런 측면은 과연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신심 행위는 다소 자유롭다.
이 자유로움 속에 거의 느낄 수 없는
한국 사람들의 기층 문화적인 정신세계 (샤머니즘 중심)가
 
교회 및 모든 신자 자신도 모르게 유입되어 졌다면
신심 행위의 침해 뿐만아니라 + 신앙의 변질도 초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그동안 몇차례에 걸쳐
이 부분에 대한 고찰을 해 오고 있다.
나 자신에게는 당연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고
조금의 문제제기 정도는 시도해 보았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느끼고 있는 점이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나주'' 관련이다.
물론 ''나주 파문''에서 이 일이 촉발되어 졌는데
결과적으로는 교회의 무관심이 더 큰 요인이 되지 않았나 하는 자각이다.
 
특히, 교회 전체에 이 책임을 물어볼 이유는 없지만
한국 레지오 단체에 대해서는 그렇지가 않다.
 
샤머니즘의 기층 정신문화가 마리아 신심 안으로
유입될 소지가 있다는 것을 애초에 인지했으며
침해 당하지 않을 만큼의 자료들을 확보하고
레지오 단원 교육에도 임하고 있었는가에 감히 눈길이 돌려진다.
 
왜냐하면 ''나주''는 간단하게 ''파문 결정''으로만
손쉽게 해결되어 지는 문제가 아니다고 보았던 것이다.
교회 전체의 문제이며, <영적인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보다 강하였다.
 
더욱이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제분들의 '샤머니즘적인 마리아 신심'
평신도들보다 먼저 소유하고 있지나 않았나 하는 궁금점이 있게 된다.
여러 ''마리아 신심 강의''에서 다소 느껴지는 부분들이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알게 모르게
마리아 강좌를 여는 사제분들의 입(말과 글)에서
평신도들의 과장되고 그릇된 신심을 가지게 하는 요인이
충분히 있었다고 설정되어 진다. (사제분들도 한국 사람이며, 특히 제의와 관계가 깊다)
 
마리아 신심에 영향을 끼치는 샤머니즘의 요소들이
구체적으로 체계화된 자료를 찾아 볼 수 없는게 안타깝다.
한편으로는 이를 얼마나 소홀히 다루고 있는지도 엿볼 수 있게 된다.
 
가톨릭 교회와 성직자들(마리아 신심)의 '자만심' 때문이라면
그리스도교의 어둠이 드리워지기도 하는 측면이 있다.
지나치게 되면 (제2의 나주, 제3의 나주 ...)
십자가만 있는 허물어진 교회의 모습을 미리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나주'는 교회 전체의 무관심(본질적인 문제 핵심에 무관심)이 아닐까 하고 -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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