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3.8 사순 제4주간 토요일
예레11,18-20 요한7,40-53
"개방도 능력이다"
마음을 여는 개방도 능력입니다.
하여 사람마다 개방의 정도도 다 다릅니다.
사랑은 개방입니다.
사랑과 함께 가는 개방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씀은
‘하느님은 개방이시다.’라는 말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자신을 활짝 개방하신 하느님이십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
하느님을 향해, 이웃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이 개방을 막습니까?
두려움과 선입견입니다.
두려움과 불안이 자기를 닫게 하고,
선입견이나 편견이 있는 그대로의 전부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하여 아는 것이 병이라는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밤의 어둠을 몰아내는 태양 빛처럼,
두려움과 불안, 선입견과 편견의 어둠을 몰아내는 빛 같은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의 능력을 주십사고 사랑이신 하느님께 간청해야 하겠습니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하느님과 이웃에 활짝 열려 있었던 예레미야와 예수님이셨습니다.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마음과 속을 떠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마음 활짝 열어 하느님께 기도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예레미야 예언자입니다.
하느님께 맡길 것은 맡기고,
자기가 해야 할 것은 하는 분별의 지혜는 개방에서 옵니다.
복음의 예수님 역시 활짝 열린 분으로,
그대로 하느님의 능력의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이에 놀란 성전 경비병의 고백입니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선입견이 없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성전 경비병 역시 열린 사람입니다.
니코데모를 제외한 바리사이들,
말 그대로 식자우환의 닫힌 사람들입니다.
다음 니코데모에게 대답하는 말에서 분명히 들어납니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오지 않소.”
성경 문자의 선입견에 사로잡혀,
살아있는 예언자이자 메시아인 예수님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하는
식자우환의 바리사이들입니다.
이 거룩한 매일 성체성사의 은총이
마음을 활짝 열어 하느님과 이웃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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