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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 2008.3.9 사순 제5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09 조회수437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8.3.9 사순 제5주일                                         
에제37,12ㄷ-14 로마8,8-11 요한11,1-45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사순시기 계속되는 새벽기도 초대송 후렴입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의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주목할 말마디는 바로 ‘오늘’입니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주님의 목소리에 활짝 마음을 열라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어제도 오늘도 없고 다만 ‘영원한 오늘’만이 있을 뿐입니다.
 
어두운 마음을 빛의 주님을 향해,
죽음과도 같은 마음을 생명의 주님을 향해,
절망하는 마음을 희망의 주님을 향해 활짝 열라는 것입니다.
 
마음 닫히면 그대로 죽음의 무덤입니다.

공동체도 닫혀 있으면 그대로 죽음의 무덤입니다.

앞문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뒷문은 사막의 하느님께 활짝 열려있어야 마음도 살고 공동체도 삽니다.
 
그러니 고립 단절의 자폐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오늘 복음 중,
무덤에서 라자로를 불러내신 주님은 바로 ‘오늘’ 우리를 불러내십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저는 이 말씀을 강론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과연 오늘 복음 중 절정의 장면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주님을 앞당겨 보여 주십니다.
 
라자로라는 이름 대신에 자기 세례명을 넣어 불러보십시오.
참 은혜로울 것입니다.

죽음과 어둠, 절망의 무덤으로부터,
생명과 빛, 희망의 주님께로 나오라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서 생명을, 어둠에서 빛을, 절망에서 희망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 짧은 말마디 안에 파스카 영성이 환히 빛나고 있습니다.


삶은 과정이자 흐름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반짝이며 흐르는 강 같은 인생입니다.
잔잔히 흐를 때도 있고 격하게 흐를 때도 있고,
탁류의 때도 있고 맑을 때도 있고 좁게 흐를 때도 있고 넓게 흐를 때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흐름의 과정 중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의 강도 똑 같습니다.
 
희망의 때가 있으면 절망의 때가 있고,
어둠의 때가 있으면 밝을 때도 있습니다.
추운 겨울이 있으면 따뜻한 봄이 있듯이
사순시기 수난과 죽음의 때가 있으면 부활시기 영광과 부활의 때가 있습니다.
 
삶이 각박하고 힘들 때일수록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또 높은 산이 되어 전체를 바라보고 내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 대화의 대목이 큰 위로가 됩니다.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타의 말을 전해 듣자 주님은 즉시 말씀하십니다.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비단 라자로의 병뿐이 아니라
불행처럼 보이는 우리의 병이나 고통도 깊이 들여다보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하늘과 땅에 가득한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우리의 존재이유이자
우리 삶의 의미, 삶의 기쁨, 삶의 행복입니다.
 
하여 베네딕도 성인도
‘모든 일에 있어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할 것이다.’ 라고 권고하십니다.

이래서 하느님 찬미가 그리도 좋습니다.
 
내 병이여 주님을 찬미하라, 내 고통이여 주님을 찬미하라....
주님을 찬미할 때 주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하느님 영광의 빛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주십니다.
 
슬픔은 기쁨으로,
절망은 희망으로,
불안은 평화로 바뀌며 치유의 구원입니다.
 
하여 결국은 모두가 잘 될 것입니다.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라자로를 살려주시기 위해 긴급 출동하신 주님은
역시 우리의 당신 찬미에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 긴급 출동하십니다.
 


삶은 믿음의 여정입니다.

믿음의 눈 있어 하느님 섭리 안에 있는 삶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절망 중에 빛나는 희망을, 하느님의 영광을 봅니다.
 
전 주일 눈 뜬 태생 소경의  “주님,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우렁찬 고백에 이어,,
마르타 역시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라고 믿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은 우리 역시 믿음을 고백하시길 간절히 바라십니다.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고맙게도 주님은 오늘 복음을 통해 무엇을 믿어야 할지 분명히 알려 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는 물론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물음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 구원의 열쇠입니다.
 
주님이 부활이요 생명임을 믿을 때
이미 지금 여기서부터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삽니다.
 
로마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참 좋은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주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고
성령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어 주셨는데,
주님의 부활과 생명을 살고 있는 우리들 인데,
도대체 무엇이 좌절시킬 수 있겠습니까?

회색 빛 우울한 허무와 무의미,
죽음의 어둠은 주님 부활과 생명의 빛에 흔적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 것입니다.
 
마침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은
우리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우리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죽음의 무덤에서 라자로를 생명의 나라로 끌어내신 주님은
이 미사은총으로 절망과 죽음의 무덤의 문을 여시고
우리 모두를 희망과 생명과 기쁨 충만한 하느님의 나라로 불러내십니다.

그대로 에제케엘 예언자의 말씀이 실현되고 있음을 봅니다.

“나 이제 무덤을 열겠다.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무덤이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마음 열리면 그 어디나 자유의 땅, 하느님의 나라 이스라엘이지만,
마음 닫히면 그 어디나 무덤입니다.
 
그러니 마음 닫혀 이기적 자기 속에 갇히면 어디나 절망과 죽음의 무덤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런 이기적 자기 무덤 속에서,
또 집단이기주의의 무덤 속에서 살고 있는지요.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이런저런 무덤으로부터 우리를 불러내시고
당신 영을 넣어주시어 충만한 친교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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