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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왜 우셨을까? .. .. .. .. ..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8-03-10 조회수1,114 추천수15 반대(0) 신고
 
 
 

                                        
 
 

    휴일날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즐기곤 한다.

    그런데 그 때마다 이런 말 하는 사람 꼭 있다



  “올라갔다 내려올 거 뭐하러 올라가는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김 빼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등산하면 힘이 많이 든다.
    숨이 차고 다리에 알이 베서 근육통이 오기도 한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사람들은 등산을 즐길까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올라가면서 얻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몸이 건강해진다.


    맑은 공기 마시면서 땀을 흘리면 몸 속에 있는 노폐물이 빠져나가고
    신선한 공기가 가슴 속 골고루 퍼져서

    몸이 훨씬 깨끗하고 건강하게 된다.
    그리고 등산하면서 구경하는 경치는 마음을 맑게 해준다.


    아름다운 풍경은 그 동안 마음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마음 가득히 여유로움과 평화를 가져다준다.
    그렇게 해서 사람은 더 큰 힘과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것 뿐이 아니다.

    올라가다가 재미난 놀이도 할 수 있고,
    신기한 동물도 만나고 나무도 손으로 만져보고,
    가방 속에 든 맛있는 간식도 즐기고

    정상에서 마음껏 소리질러 볼 수도 있다



    이런 좋은 일들이 많은데
  “올라갔다 내려올 거 뭣하러 올라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게으른 사람이다.

    오늘 예수님이 라자로를 다시 살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예수님이 일부러 늦게 가서

    라자로가 죽게 내버려 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난 라자로는 나중에 다시 죽었을게 뻔하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다시 살렸을까?
    어차피 다시 죽게 될 사람,

    억만번 살려 본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왜 우셨을까?

    라자로의 죽음이 슬퍼서 울었을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라자로가 죽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라자로가 죽은 것이 슬퍼서 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왜 우셨을까?

    죽음 그 자체 때문에 우셨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 운명을 보고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서 우신 것이다.

    그래서 살리신다.
    죽음을 없애기 위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신다.
    그래서 당신이 이 세상에 죽음을 없애고

    생명을 가져다 줄 분임을 드러낸다.


    또 다시 죽을 사람인데도 살리신 이유가 여기 있다.
    사는 것이, 살리는 것이 가치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없어야 한다.


    죽음을 가져오는 미움, 전쟁, 시기, 질투, 거짓이 없어져야 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 생명이 가득해야 한다.
    그런 뜻에서

    예수님은 라자로가 죽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가 다시 살리셨다.

    죽음이 이 세상을 삼키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다시 살림으로써 죽음을 없애신다.
    그래서 당신이 최종 승리자요, 생명의 주관자임을 드러내신다.
    마르타, 마리아가 예수님께 똑 같은 말을 했다.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르타, 마리아가 말한 대로,
    지금 여기 우리가 있는 이 자리,
    이곳에도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죽음이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어려워하고

    또 죄를 지은 탓에,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지 못하고 있음을 후회하고

    우리 생활을 바꿔야 한다



    절제 없는 생활에서 절제 있는 생활,
    느슨한 생활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생활로 바꿔야 한다.
    그런 것을 위한 연습이 힘들게 산을 오르는 등산이고,
    또 새벽미사에도 참석해 보고 그러는 것이다



    연습하고 훈련해야 몸에 베이고 정신에 베인다.
    노력하지도 않고 요행으로 하느님께서 도와주시겠지 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태도다



    우리도 결국에는 모두 다 죽을 사람이지만,
    지금 당장 아픈 사람을 고치고

    죽어가는 사람을 어떻게든 살리려고 애를 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가운데

    계속해서 게으름과 나태함이 유혹해도 그것을 이겨내고,
    어제와는 다른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도록

    우리 스스로를 단련시켜야 한다



    라자로가 죽게 놔두고 있다가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이유는
    당신이 바로 죽음을 물리칠 분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게으름과 죄와 악과 싸워서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지 못하고
    결국 죄 속에 죽어가는 우리 인생이 측은해서 우신 것이다


    그분이 울지 않도록


    악이 가져다 주는 죽음에 맞서서 정의가 승리할 수 있도록


    그래서 그분이 웃으실 수 있도록

    우리도 그분을 도와 드려야 하겠다.

 

 

 

 


 

 


** [
미국 오크라호마주 St. Josph 성당의 '우시는 예수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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