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생화(生花)냐 조화(造花)냐?" - 2008.3.17 성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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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08-03-17 | 조회수609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이수철 푸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2008.3.17 성주간 월요일
이사42,1-7 요한12,1-11
"생화(生花)냐 조화(造花)냐?"
생화의 삶입니까? 조화의 삶입니까?
봉헌의 삶입니까?
허무의 삶입니까?
봉헌의 삶이 허무의 심연을 생명과 사랑의 샘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봉헌의 삶에서 은은히 풍겨 나오는 봉헌의 향기입니다.
요즘 계속되는 따뜻한 봄 날씨에 상쾌한 봄 향기가 몸과 맘에 활력을 줍니다.
아주 예전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방안을 가득 채운 은은한 난 향기의 감동입니다.
작은 난 꽃 몇 송이의 향기가 넓은 공간의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크고 화려하나 향기 없는 꽃은 왠지 마음을 허전하게 합니다. 얼마 못 가 싫증이 납니다.
흡사 조화 같은 느낌이 듭니다.
생화냐 조화냐, 손쉽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향기일 것입니다.
향기 있으면 생화요, 향기 없으면 조화입니다.
생화와 조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꽃 같은 사람들입니다. 생화 같은 사람들도 있고 조화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꽃마다 색깔과 향기가 다 다르듯이 사람마다 색깔과 향기 역시 다 다릅니다.
과연 내 색깔과 향기는 어떠할는지요? 사람도 진정 살아있어야 향기입니다. 존재의 향기,
영혼의 향기,
마음의 향기,
사랑의 향기입니다.
요약하여 봉헌의 향기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리아는 향기 그윽한 ‘사랑의 생화’입니다.
마리아의 봉헌의 향기로 가득한 온 집안이었습니다.
다음 복음의 묘사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마리아는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역시 우리 수도자들과 신자들의 봉헌의 향기로 가득한 이 거룩한 성전입니다.
반면 유다는 사랑의 향기 없는 조화 같습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계산하는 타산적 사랑은 이미 순수한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의 부재를 반영합니다.
주님은 올바로 분별하여 마리아를 변호해 주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랑의 체험이 살게 하는 힘입니다. 순 나르드 한 리트라의 향유로
자신의 온 사랑을 주님께 봉헌한 마리아입니다.
진정 마음을 끄는 것은 봉헌의 향기입니다.
매력적인 사람은 바로 1독서에서 이사야가 말하는
주님의 종, 봉헌의 사람입니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이 없이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주님의 종의 모습 전형적인 관상가의 모습입니다. 이런 섬세한 배려와 겸손의 사람들을 통해 풍겨 나가는
봉헌의 향기,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전존재를 봉헌하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풍성한 생명과 사랑의 축복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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