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순례 - 오벨리스크
순례자의 기도: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케하시어
이 순례동안에,
항상 주님의 현존안에 머물게 하시고
서로 사랑하게 하시며,
앞으로의 모든 날이
이 순례의 은혜로 인도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말씀의 진리 안에 사는 삶 되게 하소서!
오벨리스크.
룩소르에서 순례는 계속되었습니다.
카르낙 신전을 둘러보면서 4,500년 전에
쌓았고 건축된 신전은 참으로 놀라우리만치
섬세한 글씨를 돌에 새겨 놓았습니다.
오벨리스크는 10m 정도의 높이에
정 사각형으로 다듬어진 돌 기둥이었습니다.
그 돌을 인근에서 가져 온 것이 아니라
수 천리 되는 곳에서 원석을 캐어 다듬은 것을
운반하여 이곳 신전에 세운 것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 돌기둥을
어찌 세웠는지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오늘에 와서 추측하건데
땅을 파고 그 안에 모래를 붓고 그 돌기둥을
밀어 넣어으면서 모래를 부어넣은 땅의 한 모퉁이에
구멍을 뚫어 모래를 빼내면서 그 돌기둥을 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추축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에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그리고 사람의 지혜로 세우고 다듬고 운반하면서
세워놓은 신전은 의아함과 놀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불가사의한 오벨리스크 앞에서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음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순례 중 묵상:
지금 처럼 기계 문명이 발달되어
기중기로 들어 올리고 추럭이나 기관차를 이용하여
그 육중한 돌을 옮겼다면 있을 수 있었겠지만,
그 옛날에
오로지 사람들의 힘으로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당시에 그곳에서 일했던 백성들의 고생과
노력을 잠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관람하고 놀라면서
그 찬란한 유적앞에서 감동과 감격의 뒤안에
숨겨진 피땀어린 희생이, 그들의 노력이,
오늘 이처럼
꽃을 피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바로 이 시기는
사순시기로서 오로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시면서,
사랑과 용서로
짊어 지신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향의 순수성'이란
자기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 들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 들어 내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 한들,
예수님의 십자가에 비교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우리들이 고통을 피해가도록 기도할 것이 아니라,
고통을 주시되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고통의 신비는
바로 고통을 통해서 찬란한 문화의 유산이
탄생하듯이,
우리들도 우리들의 삶에서 받아들이는
고통을 삶에서 꽃을 피우듯이,
고통의 씨를 잘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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