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문제가 생겨 안과에 갔다. 간호사는 눈물검사를 한다며 작은 칩을 두 눈에 꽂더니 5분만 기다리라고 했다. 눈이 따갑고 매웠다. 조금 있으니 눈물이 주르르 흐르기 시작했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 눈이 따가워 뜰 수가 없는데 간호사는 오지 않았다. 수녀 체면에 사람들 많은 데서 간호사를 부를 용기가 없었다. 속으로 ‘예수님, 예수님, 간호사가 저를 잊어버렸나 봐요. 간호사를 불러주세요.’ 하며 예수님만 찾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간호사를 불러주었다. “여기 계신 수녀님, 5분이 훨씬 지났는데요.” 간호사가 다가왔다. “수녀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예수’ 그 이름밖에 찾을 수 없는 처지에서 예수님을 부를 때 그 순간 예수님과 나는 하나가 된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구해 준다면 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를 구해 준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 이름밖에 부를 수 없는 처지에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 그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때 나는 그 사람뿐 아니라 예수님을 외면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오직 예수님의 이름을 찾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예수님의 공동체라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들이 찾는 바로 그 ‘예수’의 이름으로 구해 주어야 한다. 오늘날 신앙 공동체 안에는 예수님의 이름을 구하는 이가 절실히 필요하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도움을 받는 체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을 살려드려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과 봉사자들은 자신의 직무와 능력으로 하느님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던져야 한다. 만일 사사로운 이익과 자기의 욕망을 앞세워 약자들이 찾는 예수님의 이름을 외면한다면 그야말로 직무 남용이요, 유다의 배신을 재현하는 일이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13,21) 교회 안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의 이름을 외면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예수님의 이름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
서효경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You Are My Sunshine (그대는 나의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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