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펌 - (52) 부모가 된다는 것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02 조회수448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4년1월28일수요일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사제 학자 기념일 ㅡ사무엘하7,4-17;마르코4,1-20ㅡ

 

      (52) 부모가 된다는 것

                        이순의

                  


ㅡ잔소리ㅡ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생존해 계실 때, 까칠한 수염을 막내딸의 볼에 사정없이 비벼 대실 때도 그 까칠함이 꼭 싫지만은 않았었다. 그런데도 도망은 갔다. 아버지의 마음을 받는 것이 좋으니까 내 마음도 좋았다. 잠깐 까칠한 것도 좋았다. 그러나 계속 까칠한 것은 아프니까 싫었다. 그래서 도망을 간다. 병약한 막내를 밥상 앞에 앉혀 놓고 건강만 하면 아버지가 미스코리아도 시켜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그래서 나는 건강만 하면 미스코리아가 될 수 있을 만큼 내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어미 되어보니 아버지의 말씀이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당연히 미스코리아 보다 예쁘다. 아버지께 보신 나의 가치는 어쩌면 미스코리아쯤은 미인도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자식을 가져 보니 아버지의 마음은 당연히 틀리지 않았다고 내 자식이 어미 된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나도 내 아들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그런데 이놈은 나랑 다르다. 나는 내가 미스코리아 보다 예쁘다고 생각 했는데 내 아들은 나더러 미친 엄마라고 구박을 한다.

 

때로는 "저리가라 잡귀야. 훠이훠이" 하며 마귀를 물리치는 푸닥거리까지 해 댄다. 그럴 때면 내가 효녀였고 내 아들은 불효자라고 생각한다. 제 놈도 제 자식 낳아보면 내 말을 알아들을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의 마음만 닮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잔소리까지 닮아가고 있다.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내 자식에게 쏟으며 살고 있다. 어머니께 들은 잔소리는 별로 없다. 막내인데다 아픈 치레를 자주 했으니 어른들의 근심이 다른 곳에 쏠렸으므로 내가 들은 잔소리보다 언니나 오빠들에게 하시던 잔소리를 곁에서 들어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어린 막내의 눈으로 보았을 때, 어머니의 속을 썩혀드려서 왜 저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는지 원망스러웠던 형제들이 오히려 지금은 더 잘 살고 있다. 지금은 지난 기억을 망각하기도 하고, 상하게 해 드린 어머니의 마음을 가늠하지 않더라도 살아들 가지만 늦게까지 부모님 곁에 남아서 수많은 한숨들을 보아 온 막내는 고스란히 기억되는 게 많다. 나는 말도 잘 듣고 부모 가슴에 주름을 펴 주는 자식을 둘 거라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힘겨운 삶을 볼 때 마다 나는 꼭 순종하는 자식을 두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내 아들을 키우며 그 시절의 어머니를 따라 복습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고 형제들은 모두 각자의 둥지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산다. 부모의 꾸지람과 지천을 견디며 성장해 온 형제들이 더 잘 살고 있다. 어려서 부모님의 꾸지람을 거의 듣지 않고 성장한 나는 그들보다 훨씬 잘 살지 못 하고 있다. 그 때는 저렇게 혼이 날거라면 차라리 말을 잘 들어버릴 것이지 그 말을 듣지 않고 채벌을 감당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꾸중이 많았다는 것은 그 만큼 부모님의 관심이 많았고 기대하는 수치가 높았던 것이다. 그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부모님은 위의 형제들께 항상 잔소리와 염려를 일삼고 계신 것이었다.

 

내가 그걸 알아낸 것도 자식을 둔 다음이다. 왜 자식은 그렇게 부모의 말을 안 듣는지도, 부모는 왜 그렇게 자식을 혼내야 하는지도, 내가 어미 되고 나서 알아낸 것이다. 꾸지람이 많다는 것은 말썽이 많고, 말썽이 많다는 것은 경험이 많으며, 경험이 많다는 것은 생각을 분산 시키고, 생각을 분산 시킨다는 것은 해야 할 것을 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제 때에 해야 할 일과 제 때에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치느라고 입술이 타는 것이다. 자식은 때가 되면 말썽을 피우고, 그 대가로 잔소리를 그만큼 들어야만 부모로 부터 얻는 게 많아지는 것이었다.

 

말썽을 피우지 않아서 들어보지 못한 잔소리는 어른이 되어서는 들을 수가 없다. 다 자라서 부리는 말썽은 부모의 영역 밖에 있다. 어른이 되어서 듣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자식의 삶에 반영하고 감당하기에는 그 부모가 너무나 나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식이 부모의 울타리가 되어 연로하신 부모님의 잔소리를 그저 자상한 사랑의 표현이나 관심 정도로 응답 해 드릴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식이다. 그리고 그 자식은 누구나 어른이 되고 거의 대부분의 자식들은 부모가 된다.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만 알아들으라고 하신다. 언제나 그랬다. 아담과 하와 때부터 야훼 하느님은 위험에 대한 경고를 하시며 자식에 대한 자율적 선택을 권고 하신다. 예수님도 모두에게 좋은 땅에 떨어지는 씨앗이기를 바랐지만 그 응답은 모두의 자유의지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부모 되어 보니 모든 제 자식은 다 들을 귀가 있기를 바란다. 어느 한 놈만 들을 귀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식은 모두 들을 귀가 있기를 바란다. 부모의 경험과 지혜와 경고들을 모두 자식의 것으로 만들어서 내 자식만큼은 부모가 경험 했던 실수들로 인한 아픔을 비켜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의 자율권은 자식에게 있다.

 

나도 내 자식에게 잔소리를 수 없이 한다. 그러나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아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은 자식의 자유의지다. 부모가 해 주는 잔소리는 자식에게 살이 되고 피가 될 것이다. 지금은 그 까칠함이 싫어서 반항하며 도망을 가겠지만 훗날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면 결코 싫은 것이 아니었다고 고백할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다. 그 고백이 그 자식을 또 부모이게 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살아 오셔서 그렇게 까칠한 수염을 중년의 막내딸에게 다시 한 번만 비벼 주신다면 이제는 절대로 도망을 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미스코리아 보다 더 이쁜데 왜 아직도 미인대회에 출전을 시켜주지 않으시냐고 응석을 부려 볼 것이다. 그럼 아버지는 이쁜 막내딸을 분명히 미인대회에 보내서 일등상을 주시고야 말 것이다. 나도 내 아들이 세상에서 제일 미남인데 내 아들은 엄마더러 미친 엄마라고 하는 걸 보니 나는 내 아버지 같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엄마인가보다. 내 어찌 아버님의 그림자라도 흉내를 낼 수 있을 것인가?!

 

ㅡ씨 뿌리는 사람이 뿌린 씨는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이다. 마르코4,14ㅡ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