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bread of life;
whoever comes to me will never hunger,
and whoever believes in me will never thirst.”
(Jn.6.35)
제1독서 사도행전 7,51─8,1ㄱ
복음 요한 6,30-35
요즘 많은 사람들의 주 통신 수단은 휴대전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휴대전화의 문자서비스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지요. 그래서 저 역시 매일 아침마다 그날 우리가 가슴에 새길만한 성경말씀을 문자메시지로 보내고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연락할 일이 있으면 이 문자메시지를 주로 이용합니다.
며칠 전의 일입니다. 우리 본당의 고3 학생들에게 힘내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혹시 저의 번호를 모를까봐 메시지 맨 뒤에 ‘빠다킹신부’라는 글을 적어 넣었지요. 그런데 문자를 보내자마자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여보세요.”라고 말하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에게서 울리는 음성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누구세요?”
보통 전화 한 사람이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약간 신경질적인 말투여서 저는 몹시 당황스러웠지요. 그리고 “조명연신부인데요.”라고 대답하자, 상대방은 “네? 신부가 뭐하는 사람인데요?”하면서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더군요. 문득 ‘방금 내가 문자를 보낸 고3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화통화를 하면서 주소록을 보니 맞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말했지요.
“나 본당신부라고.”
그때서야 알아보더라고요. 그리고 나중에 연락이 다시 왔는데, ‘빠다킹 신부’라고 적혀 있어서 결혼이벤트회사 광고 전화인줄 알았다는거에요.
아무튼 그 당시에는 무척이나 서운했습니다. 그래도 생각해서 문자를 보냈는데 이렇게 응답을 하니까, ‘앞으로 문자를 보내지 말까?’라는 생각까지 했었지요. 하지만 저를 알아본 다른 고3들의 고맙다는 답장을 보면서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런데 문득 ‘100%의 만족? 과연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긴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인데,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반대하는 그 모습에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해 왔던 봉사와 희생을 이제는 안 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큰 욕심입니다. 사람들에게 100%의 인정을 받겠다는……. 주님께서도 100%의 인정을 못 받아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는데, 나는 100%의 인정을 받아서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겠다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렇게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그리고 그렇게 가슴에 많이 와 닿는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표징을 보여 달라는 욕심을 보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그 모든 행동과 말씀도 100%의 인정을 이끌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과연 어떤지요?
오히려 내가 받는 부정적인 평가를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는 것이기에……. 그리고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이기에…….
커피 같은 사람이 돼라(루화난, ‘인생의 레몬차’ 중에서)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며 딸이 아버지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요리사인 아버지는 말없이 딸을 주방으로 데리고 가더니 세 개의 솥에 물을 담아 불 위에 올려놓았다. 솥 안의 물이 끓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세 개의 솥에 각각 당근과 계란 그리고 곱게 갈아 놓은 커피를 넣었다.
한 20분쯤 흘렀을까. 아버지는 불을 끄더니 당근과 계란을 각각 그릇에 담고, 커피는 잔에 부었다. 그러고는 딸에게 가까이 다가와 당근을 만져 보라고 했다. 처음 솥에 넣을 때와는 달리 잘 익어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아버지는 또 계란을 깨 보라고 했다. 계란 껍질을 벗겨 보니 역시 속이 단단히 잘 익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커리를 한 모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당근과 계란, 커피는 모두 똑같이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역경을 겪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모두 다르게 나타났지. 넌 어느 쪽인지 생각해 봐라.”
아버지는 묵묵히 생각에 잠긴 딸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본래 강했지만 고통이 닥치자 스스로 몸을 움츠리고 아주 약해져 버리는 당근이냐? 아니면 본래는 연약하고 불안했지만 시련을 겪고 난 뒤 더욱 강인해 지는 계란이냐? 그도 아니면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뜨거운 물을 변화시키고 좋은 향기를 내는 커피냐? 네가 커피가 될 수 있다면 힘든 상황에서도 현명해지고 희망을 가지게 될 것이며, 주변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What sign can you do, that we may see and believe in you?
(Jn.6.30)
May Second -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Tuck & Patti - I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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