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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녕 성령이 하시는 일임이 자명하다!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10 조회수603 추천수10 반대(0) 신고

 

말씀: 사도 8,26-40

 

오늘 독서에는 에티오피아 여왕의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 등장한다.

이 고관은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하느님을 알고 경배해왔던 인물이다.

벼르고 별렀던 예루살렘 순례도 무사히 마치고

다시 고국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는 배를 타기 위해 '가자'로 내려가고 있었다.

한적한 길에 이르러 잠시 말과 시종을 쉬게 하고

자신은 수레 안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마침 필립포스도 그 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스테파노 사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일시적으로 흩어져 있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유다인들을 피해 외딴 길로 접어든 필리포스는 수레 안에서 낭랑히 퍼지는 책 읽는 소리를 듣는다.

귀에 익숙한 이사야 예언서, “야훼의 종”의 노래라는 것을 즉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감이 어쩐지 어색하다. 수레 안의 인물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곧 짐작할 수 있었다.

 

필리포스는 유다인이 아닌 것을 확인하자 안심하고 다가가 묻는다.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고관은 필리포스에게 자기 곁에 앉아 수레를 타고 함께 가자고 청하였다.

고관은 성경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성경이 가리키는 인물, 즉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고난 받는 ‘야훼의 종’이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필리포스는 이사야가 바로 예수님에 대해 예언한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돌아가셨지만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기로 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다는 말을 하였다.

 

그 말을 듣자 고관은 갑자기 수레를 멈추라고 하더니 길가에 흐르고 있는 냇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필리포스는 두말할 것도 없이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

두 사람은 기쁨을 나눌 시간도 없이 서둘러 발길을 돌려야했다.

세례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어 에디오피아로 돌아갈 배를 놓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그와 헤어져 필리포스는 생각했다.

어떻게 그 한적한 길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을까?

어떻게 낯선 이방인에게 접근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토록 부유한 고관의 수레를 탈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한 나라의 왕실 재정담당관이 자신의 이야기를 그토록 경청했을까?

어떻게 그 고관이 자신에게 세례를 청했을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모든 일이 번갯불에 콩 구워먹을 만큼 빠르게 진행된 일이지만,

마지막에 그와 헤어질 때의 일은 더더욱 경황이 없었다.

누군가 자신의 정신을 잡아채간 것 같기도 하고 꿈을 꾼 것 같기도 했다.

 

필리포스는 아스돗에서부터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해안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물론 거기로 오는 동안에 이루어진 놀라운 일,

즉 에디오피아의 고관에게 세례를 베푼 일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그 모두가 생각하면 할수록 하느님이 주도면밀하게 계획하신 일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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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주일이면 그동안 교리를 맡았던 본당에서 또 세례자들이 탄생한다.

그 본당에 교리 봉사하러 간 후 두 번째 배출되는 세례자들이다.

되돌아보면 내가 어찌 그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을까?

  

하찮은 나의 말을 경청하기에는 너무나 박학하고 너무나 재능 있고 너무나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는 오늘 필립포스가 만난 고관처럼 부유하고 귀한 신분의 사람들도 꽤 있다.

개인적으로 다른 장소에서 만났다면 나같은 사람은 근접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이번에 세례를 받는 분 중에도

내로라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동시에 서양화가이고 대학교수이신 분이 계시다.

그분의 아들, 딸, 사위가 함께 세례를 받는데 모두들 경력이 화려하다.

 

사실 이분들을 처음 만날 때부터 걱정이 앞섰다.

온 가족이 함께 나오셔서 매우 기뻤지만,

혹시라도 모두가 다 함께 빠지는 날이 생기면 자리도 휑해지고 나도 힘이 빠질까봐 걱정스러웠다.

환영의 인사를 하던 날, 그것이 걱정이라는 말을 드렸더니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약속대로 교수회합이 있는 날도 택시 속에서 기도하며 오셨다고 하여서 나를 감격시키셨다.

고작 남은 교리 시간 20분을 듣자고 그렇게 회합이 끝나자마자 서두르셨다니 말이다.

외국에 나갔다 돌아오는 날도 공항에서 곧장 달려오셨다.

 

이분의 가족들 모두는 오늘 독서의 고관처럼 겸손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있다.

교재는 언제나 미리 다 읽고 오셨고, 제시된 문제까지 다 풀어보고 왔음에도

교리 시간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경청하고 필기하셨다.

 

나는 이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이 하시는 일임을 더욱 깊이 깨닫는다.

나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그분들의 마음을 하느님이 열어놓으셨다는 징표가 너무나 뚜렸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오히려 이런 분들을 통해 지식인, 부유층, 유명인사에 대한 내 그릇된 선입견을 깨뜨려주셨다.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들을 편견없이 대해야 함을 가르쳐주셨다.

또 사람들의 외적 조건에 따라 공연히 주눅 들어 있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리포스가, 또 사도행전의 작가인 루카가

모든 일의 배후에서 성령께서 지시하셨다고 구구절절 묘사하는 마음을 정말 잘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이런 귀한 분들을 알게 해주신 하느님. 

영광스럽게도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 

인간적 친분이 아니라 하느님의 한 가족으로 만날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감사를 돌린다.

 

오늘 세례를 받은 고관이 기쁨에 넘쳐 집으로 돌아갔듯이,

새로 태어날 세례자들 모두가 하느님을 만난 기쁨,  하느님의 자녀가 된 기쁨에 넘쳐

그분의 품에서 참행복을 한껏 누리시기를 기도한다.

 

 

 

 

 

 


     파가니니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

    Adagio Cantab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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