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판공성사 면담 때 본당 신부님이 ‘남매는 용감하다!’라는 말로 고교생 오빠와 여중생인 나를 맞아주신 적이 있다. 그 당시 부모님과 다른 형제들은 신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첫영성체 후 기도는 일생을 통해 꼭 들어주신다는 대모님의 권고대로 세 가지 기도를 했는데 모두 이루어졌다. 몇 년 후 가족 모두 세례를 받았고, 오빠는 신학교에, 나는 수녀원에 입회했다. 뒤늦은 신앙이었지만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며 가족 모두 우리의 봉헌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이들이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은 것처럼(66절) 오빠는 부제품 전에 스스로 신학교를 떠나 신앙생활을 등지고 쉬는 교우가 되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워 선뜻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오늘 복음 묵상에서,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던 예수님을 만난다.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도 주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모두 떠나갔다. 나 또한 그럴듯한 고백을 하면서도 어려움을 겪거나 자신의 뜻과 다른 일이 생기면 주님으로부터 저만치 도망친 적이 얼마나 자주 있었던가? 무엇이 진정한 머무름인가?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떠나갔던 제자들에게 평화를 건네시며 친히 다가오셨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은 연약한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하시며 한결같은 사랑으로 늘 머물러 계신다. 모든 이가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품으로 달아들어 진심 어린 오롯한 봉헌을 할 수 있는 복된 그날을 그려본다.
김연희 수녀(예수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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