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멀리 대구 시내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불숙 우스갯소리를 꺼냈습니다.
“호승아, 더 대구 시내 한복판에 앞으로 내가 만나 살 여자가 살고 있을 거야. 그렇지? 그런데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형은 농담 삼아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픽 웃었습니다.
“아마 호승이 네 여자도 지금 저기 있을 거다.”
형은 그 말이 유쾌한지 킥킥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호승아, 앞으로, 10년 뒤에 네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항상 생각하며 살아라.”
저는 형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나 하고 퍽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난 10년 뒤에 정신과 의사가 되어 있을 거다.”
저는 그때야 형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막막하기만 할 뿐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1년이 지나면 또 1년이 지난 그 시점에서, 5년이 지나면 또 5년이 지난 그 시점에서 10년 뒤의 나를 생각하는 거야.” 형은 얼굴에 웃음기를 거두고 어느새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래, 형은 의과대학생이니까 틀림없이 정신과 의사가 되어 있을 거야.”
나는 형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 아마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도 갔다오고 어디 직장을 다니겠지’ 하는 생각을 막연히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후, 형과 나는 더 이상 그런 대화를 나눈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형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베트남전에 참전한 뒤 곧바로 미국으로 유학 가 정신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형의 그 말에 힘입어 ‘아, 나는 10년 뒤에 시인이 되어 있을 거야’하고 생각하다가 시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형의 그 말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10년 뒤의 나를 그려보면서 살아왔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그런 대로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그리지도 않은 그림이 그려져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금도 제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가까운 이들에게 곧잘 그런 말을 합니다. 어쩌다가 고등학교에 문학강연이라도 가면 학생들에게 꼭 그 말을 강조합니다.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오늘 지금 생각하라. 그리고 1년이 지나면 또 그 시점에서, 2년이 지나면 또 그 시점에서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생각하라. 그러면 생각한 그 모습 그대로 내 삶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말을 형을 대신해 제가 합니다.
나의 미래는 지금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나의 미래는 나의 미래가 결정짓는 게 아니라 나의 오늘이 결정짓습니다.
저는 지금 10년 뒤의 내 모습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봅니다. 만일 건강이 허락되어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저는 60대 후반에 이른 ‘시를 쓰는 노인’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