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동하실 때가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다른 본당으로 인사발령을 받은 신부님에게 “어르신께서 믿고 보내시나 봅니다.” 하고 감히 말씀드렸다. 올해 새로운 곳으로 소임 이동을 하는 동창 수녀에게 “그곳의 적임자는 수녀님이라서 장상 수녀님이 믿고 보내시는가 봐요!”라고 말했다. 객관적 위치에서 바라볼 때 스스럼없이 신뢰성을 운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에게 적용했을 때는 선뜻 ‘나를 믿고 파견한다.’는 신뢰심이 약해진다. 그동안 파견을 받으면서 ‘왜 하필 그곳이지?’, ‘왜 나야?’ 하는 불만이 먼저 튀어나오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며, 파견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갖는다.
공생활을 마무리하시고 이제 당신 제자들만 곁에 두시고 고별 담화를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기시고 신뢰 깊고 친밀한 대화로 이끄시는 예수님의 행동은 온통 사랑으로 감싸여 있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17절)라는 말씀에서 섬김의 봉사와 사랑의 사명을 받는다. 주님한테서 흘러나오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웃 형제들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사랑의 파견은 주님과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알게 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20절)
세상을 향한 우리의 파견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사명이다. 극진한 사랑을 보여주시며 우리를 믿고 세상 곳곳에 보내시고, 크고 작은 봉사에 파견하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우선적으로 떠올린다면 우리의 순명은 주님께 드리는 사랑의 응답이 될 것이다.
언젠가 성서모임 봉사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주님께서 수녀님을 통해 저를 불러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시작하셨으니 주님께서 마쳐주시겠지요.”라고 한 자매의 응답을 듣고 고개 숙여 고마워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김연희 수녀(예수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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