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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 21일 부활 제5주간 월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21 조회수1,066 추천수22 반대(0) 신고

                   4월 21일 부활 제5주간 월요일-요한 14장 21-26절

          

“원장님, 안 그래도 일손이 많이 부족하실 텐데, 저희 아이들 너무 많이 보내서 정말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우 경식 요셉 원장님>

 

며칠 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 한동안 망연자실했습니다. 요셉 의원 선우 경식(요셉) 원장님께서 쓰러지셔서 병원으로 실려 가셨고, 오늘밤을 넘기기 힘들다고, 기도해달라고...


불과 한 달 전, 요셉의원 후원자, 봉사자 피정 강사로 초대해주셔서 뵈었을 때만 해도 멀쩡하셨는데, 이제 몸이 많이 회복되어 병원에 자주 나올 수 있어 행복하다며 환하게 미소 짓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오늘은 영정 사진 속에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남아있는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더군요.


영안실에는 대통령님을 비롯해서 국무총리님, 추기경님들, 각계각층의 요인들이 보낸 화환으로 빼곡했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분들의 추모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 있습니까? 요셉 원장님은 이제 떠나셨는데, 더 이상 우리 곁에 안계신데...


개인적으로 저는 요셉 원장님 신세를 톡톡히 진 사람입니다. 제가 하고 있던 일의 성격상 길거리를 떠돌던 아이들,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제집 드나들듯 들락날락하던 청소년들을 많이 만났었는데, 그 아이들 가운데 몸과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병원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체면불구하고 아이들을 요셉의원으로 보내곤 했습니다.


화려한 영등포역을 뒤로하고 을씨년스런 골목길로 접어들면 보기만 해도 정겨운 요셉의원 간판이 눈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곳은 마치 훈훈한 벽난로 같은 장소였습니다. 그곳에 들어설 때 마다 늘  들었던 느낌은 편안함이었습니다. 따뜻함이었습니다. 환대받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곳에서는 늘 문전박대 당하던 가난한 이웃들도 제 집 드나들듯이 당당히 출입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이 모든 것 보다 더 좋았던 것 한 가지는 요셉 원장님께서 그곳에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요셉 원장님, 돌아보니 참으로 자상했던 분이셨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고왔던 분이셨습니다. 관대한 분이셨습니다. 늘 무엇 하나 더 챙겨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지난 달 후원자 봉사자 피정을 마치고 요셉의원을 나오던 때 마지막으로 뵈었던 원장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점심 식사 때, 몸도 성치 않은 분이 뭘 그리 이것 저 것 꼼꼼히 챙겨 주시던지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차 가지고 오셨냐? 차 가지고 오셨으면 아이들 먹을 것 좀 실어드릴 텐데, 다음번 오실 때는 꼭 트럭 몰고 오시라, 그래서 좀 실어가시라고.


열차 시간에 쫓겨 황급히 뛰어가는 제 뒷모습을 한참동안 쳐다보시더군요. 빨리 들어가시라고 손짓해도 계속 거기 그렇게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는 끝이군요. 요셉 원장님. 너무나 아쉽습니다.


요셉 의원은 한 마디로 이 땅의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였습니다. 떠도는 환자들을 위한 의료봉사뿐만 아니라 세탁, 목욕, 무료급식 등이 함께 이루어지던 참 교회였습니다.

 

더욱 저를 기쁘게 한 일 한 가지가 그곳은 한마디로 ‘나눔의 교차로’였습니다.


원장님께서 제게 하셨던 말씀에 따르면, 생필품이나 의류, 식료품 등을 기증하겠다는 전화가 오면, 일단 사양하지 않고 모든 물품들을 접수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밤늦도록 분류작업을 하고 잉여 분량에 대해서는 즉시 보다 가난한 시설이나 단체와 나눠 쓴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많은 아이들을 요셉의원에 보내곤 했기에, 그래서 원장님께 끼친 민폐가 만만치 않았기에 한번은 제가 인사치레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원장님, 안 그래도 일손이 많이 부족하실 텐데, 저희 아이들 너무 많이 보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 때 하신 원장님의 말씀은 정말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신부님, 그런 말씀 절대 하지 마십시오. 저희 병원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 아이들 때문입니다. 이 아이들 저희 병원에 안 오면 저희 병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문 닫아야 합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 많이 보내주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사랑의 계명 준수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요셉 원장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랑의 계명에 충실한 삶인지를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여주고 떠나셨습니다.


요셉 원장님께서 보여주셨던 그 사랑의 실천이 또 다른 누군가의 손을 통해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그것이 천상에 계신 요셉 원장님께서 간절히 바라시는 것이겠지요.


지난번 요셉의원 후원자 봉사자 피정 강의 갔을 때 제가 서두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곳 요셉의원에서 봉사하시고, 또 이곳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시는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들이십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들이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두 가지 모습으로 다가오시는데, 첫 번째 모습이 가난한 이웃들의 얼굴입니다. 이곳을 찾는 병들고 가난한 이웃들의 얼굴은 예수님의 또 다른 얼굴이 확실합니다.


두 번째 예수님께서는 고통이란 얼굴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고통은 하느님의 또 다른 얼굴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곳 요셉의원에서는 이 두 가지 예수님의 얼굴을 동시에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에만 들어서면 가난한 이웃들의 고통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집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현존이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곳 요셉의원은 예수님께서 확실하게 현존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들의 작은 나눔과 봉사는 하느님께로 향하는 가장 확실한 봉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흐뭇한 얼굴로 별로 영양가 없던 제 강의를 듣고 계시던 원장님의 얼굴이 몹시도 그립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셉 원장님. 이제 더 이상 통증도, 과로도 없는 천국에서 편안한 안식을 누리십시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211번 / 주여 나의 몸과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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