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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눈치보지 말고 살아라(Wood of the Cradle, Wood of the Cross)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8-04-23 조회수607 추천수4 반대(0) 신고
 어제 유운(遊芸)이 나에게 물었다. 그의 가정 이야기를 숨김 없이 쓴 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카릴 하우스랜더(Caryl Houselander 1901-1954)가 그녀의 책 < Wood of the Cradle, Wood of the Cross>에서 말한 "단순함은 어리석음이 아니다."는 말을 해주었다. 짧은 영어실력이지만 책의 내용이 좋아서 발췌 번역하여 보내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함은 어리석음이 아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가르치기도 한다. 단순함은 '복잡하지 않는 것', '이중적이지 않은 것', '자기 자신이나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니다. 남에게 단순하게 보이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단순하게 되면, 겸손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되고, 자비를 베풀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단순하기를 즉 복잡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거나 낙담하거나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느끼게 되는 주된 이유는 우리가 그들에게 복잡한 요구를 하기 때문이다.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에너지를 받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은 우리와 관계에서 그 에너지를 요구한다.사람들과의 관계에는 공평하게 서로 주고 받게 하는 정상적인 요구와, 손해를 느끼게 하는 비정상적인 요구가 있다. 많은 에너지를 쓰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을 아는 데에는 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은 심리적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 이내 지쳐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거의 요구하지도 않으며 어떤 사람은 주기만 한다. 
 
 이렇게 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단순하지 않아 복잡한 요구를 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고민해보지 않고 즉각적으로 또 단순하게 응답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이들은 복잡한 요구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들은 믿을 수도 없고, 성 잘 내고, 지나치게 예민하고, 자기 자신을 과장하거나, 제2의 천성이 되어버린, 결코 자신의 모습이 아닌, 허식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 수밖에 없을 때가 많다. 그들은 자신이 말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당황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그들의 권위를 거스르게 되었을 때나, 그들이 했던 모든 말이나 행동을 곰곰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또는 그들의 허식을 옹호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가식을 보이면, 그들의 사회에서 추방해 버린다. 
 
 단순한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다른 사람에게 최소한의 요구만 한다. 단순함은 인간성에 고유한 아름다움을 줄뿐만 아니라 참사랑의 행동을 하게 만든다. 동시에 자신의 영혼을 희생시킴으로써,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이롭게 만드는, 진리의 본보기를 보이게 된다.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단순하게 되어, 온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칭송을 기대하지 않고 아무 가치도 없는 목표를 세우지도 않게 된다. 대신에 자신의 행복에 공헌하게 되고 또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부자 되기를, 성공하기를, 인기 있기를 바라지 않고, 집에서 손수 무엇을 만들거나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경탄하거나, 서로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본능을 만족시키려 하게 된다. 진정한 행복을 위하여 일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특성이기도 한, 손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난한 것을 더 좋아하여 세상의 맛이나 표준에 맞추려 하지 않고, 그들이 느낀 대로 사물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속세를 떠난 삶을 사는 것을 뜻한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받아들이려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린이 같은 단순함과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안에 있는 비현실적인 것들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들이 자신을 직시하여, 우리들이 애써 만든 모든 가식을 뿌리 채 뽑아내어 버리고 난 후에 생기는 텅 빔과 허탈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에게 닥친 시련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진리에 가까운 가식이란 있을 수 없다. 또 진실과 비슷한 거짓도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이다. 우리의 운명은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삶을 이 세상에 옮겨 놓는 것이다.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평화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떠 받치고 있는 야망이나 환상과 같은, 경멸할 만한 사소한 것들이 항상 그리스도 곁에 있다. 현실로 존재하고 있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믿음과 겸손을 배워야 한다. 하느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곧 우리들의 삶을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경험할 때마다 우리들은 자신의 왜소함을 알게 되고, 자신이 왜 필요한가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리스도의 기적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우리들은 하느님의 창조물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이기도 하고 하느님의 외아들이기도 하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유일한 목적이기도 하다. 우리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과 우리들이 완전하다는 사실이 믿음의 저울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진리의 빛 안에서 아무것도 눈치보지 말고 삶을 살아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들은 어린이 마음 같은 천국으로 인도되게 된다.
 
 시에나의 성 캐더린은 "하늘에 이르는 모든 길은 하늘에 있다."고 말했지만 어린이 마음 같은 천국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어린이가 되지 않으면, 생명이고 영혼의 하늘인, 그리스도 어린이가 될 수 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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