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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월 4일 야곱의 우물- 마태 28, 16-20/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04 조회수525 추천수2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16-­20)
 
 
 
 
마태오복음의 마지막 단락인 오늘 복음에는 저자가 복음서 전체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이 몇 마디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곧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하고, 부활하신 분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가난하더라도 불행하지 않고 벼랑 끝에 서 있더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는 확신이 있으면 그 신의 때문에 함부로 행동할 수도 아무렇게나 살 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나를 믿어주는 그 사람 때문에 내 삶은 빛나고 가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28,7ㄴ) 앞에서 분부하신 대로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갑니다. 예수님이 공생활의 첫발을 내디디신 갈릴래아에서 다시 시작하십니다. ‘열한 제자’라는 언급에서 유다의 배신이 마음에 걸립니다. 하나가 빠졌을 뿐인데 많이 어색하고 부족하고 허전합니다.
분부하신 집결 장소는 산입니다. 마태오는 산을 계시와 구원의 장소로 보았습니다(4,8; 5,1; 14,23; 15,29; 17,1; 24,3). 산에서 유혹을 받으셨고(4장) 행복을 선언하시고(5장) 긴 설교를 하셨으며(5­-7장) 예수님의 영광 또한 산 위에서 빛났습니다(17장). 마태오복음에서 산은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는 장소입니다.

 
천사가 전한 말대로 예수님은 먼저 와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절하는 자세 역시 마태오복음에 여러 번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평소 이렇게 인사하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살아생전의 예수님을 대하듯 스승께 최고의 예를 갖추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지켜줍니다.
물론 더러는 의심했습니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했겠지요. 부활은 이 세상의 존재 방식과 달라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누구든지 의심을 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신앙과 불신앙 사이에서 자주 흔들립니다만 그 흔들림과 의심에서 신앙은 출발합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18절) 평소에도 권능을 지닌 분으로서 가르치셨고(7,`29), 병도 고치시고 죄도 용서하셨습니다(9,6.8; 10,1). 비록 죽음으로 이 권한이 무너진 듯 보였지만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여전히 하늘과 땅의 우주적 통치권자이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19-­20ㄱ절) 제자들이 찾아 나설 대상을 일러주십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 곧 세계 만민이 제자들의 전도 대상입니다. 갈릴래아는 이방인 지역과 접해 있어 다른 민족들에게 나아가기가 수월한 곳입니다. 그분의 복음은 모두에게 유효합니다. 아무도 제외시키지 않으십니다. 온 세상은 예수님을 알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첫 소명은 온 세상을 편 가르지 않고 모두를 품는 일입니다. 예수님 대신으로 온 세상을 ‘제자로 삼는 일’입니다. ‘제자로 삼다.’는 말은 신약에 네 차례 등장하는데, 그중 세 번을 마태오가 사용해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제자가 되게 하는 것은 예수님을 알리고 체험하도록 안내하는 것이기에, 제자들 자신의 확고한 믿음이 우선해야 합니다.
제자로 삼은 이들에게는 먼저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제자 된 이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이제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됩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 자녀로서 인간으로서 참된 존엄성을 경험합니다. 누구 앞에서든 어디에서든 당당할 수 있습니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으로 멈추지 않습니다. ‘명령한 모든 것’을 지켜야 합니다. 말씀에 따라 새로운 행동으로 스스로 달라지는 것이 제자로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복음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명령한 모든 것’이란 앞서 산상수훈(5-­7장)과 공동체 설교(18장)에서 당부하신 계명을 말합니다. 하느님과의 친밀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날마다 성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자녀답게 처신해야 합니다.

이렇게 세례를 주고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는 것(20절)이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를 파견하여 전도하게 하신 목적이며, 교회 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끝까지 스승의 면모를 보여주십니다. 의심을 품었음에도 소명을 주십니다. 믿고 맡기시니 그 소명에 몸 바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20ㄴ절) 마태오복음 서두에서 하신 말씀과 연결됩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1,23) 이 말씀을 되새겨 주시며 또 한 번 다짐하십니다. 예수님은 소명에 몸 바친 이들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고 싶어하는 우리의 열망을 잘 아시고 안심시켜 주십니다.

 
부활 상황 묘사가 짧은 것에 비하면 말씀은 긴 편입니다. 사실 부활 신앙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엄청난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부활 신앙이 그리스도교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정식으로 탄생한 것은 예수님 살아생전이 아니라 예수님 사후에 제자들이 예수님 부활을 여러 차례 목격하면서부터이기에, 부활 사화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은 복음의 절정이며 이 절정에서 복음은 마무리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절정을 사시다가 하늘 본향으로 돌아가셨지만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임마누엘 예수님만이 희망입니다.
강지숙(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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