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순교자들의 하느님-윤임규(토마)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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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중옥 | 작성일2008-05-05 | 조회수532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한밤중에 혼자 깨어 조용히 마음 가다듬어 봅니다. 내 마음 속에 깃든 당신 생명의 말씀의 비중을 헤아리며 자신을 살핍니다. 사랑을 가르치시고 사랑을 실천하시고 사랑이 되신 주님. 밤중에 이렇게 당신을 생각할 수 있는 처지도 사람들은 좋은 팔자라고 여길 것 같아 죄송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글을 써내려가는 순간에도 내가 있는 아파트 앞의 직물공장은 계속해서 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어둠 저쪽에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몇 푼의 돈을 벌기 위해 지루한 기계 앞에 매달린 사람들의 모습이 어른거리기 때문입니다. 밤새껏 돌아가는 기계소리는 "팔자 좋다. 팔자 좋다"하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마르 12.30)는 당신의 첫째 계명을 스스로 실천하지 못하면서 오늘 사람들 앞에 거창해 뵈는 제의를 걸치고 건방지게 떠들었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괜스래 바쁘던 주일의 모든 일과를 끝내고 이렇게 당신의 말씀을 되새겨보면 소름이 돋아납니다. 당신의 그 말씀은 실천하기가 너무 어렵습닏. 말씀 그대로의 극치는 바로 죽음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당신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장님의 세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눈 질끈 감고 숨을 멈추고 어둠 속에 자신을 내동댕이치지 않고서는 아니되는 미칠 것 같은 말씀입니다. 당신께 대한 깊은 신뢰 없이는 도저히 꿈꾸지 못할 세계입니다. 주님 너무 어렵습니다. 좀 쉽게 살도록 조정해 주실 수는 없나요? 고통이 오면 피하고 싶고 즐거운 일은 붙들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인 줄을 주님께서도 체험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도 끝내 당신은 잘라서 말씀하셨습니다. "다하라"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모든 걸 "적당히" 하고 싶어합니다. 당신의 말씀도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네 마음을 적당히 다하고 목숨을 적당히 다하고 생각을 적당히 다하고 힘을 적당히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적당히 사랑하라." 이렇게만 말씀하셨더라도 소위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양심이 좀 편안할 것입니다. 그 정도만 말씀하셨더라도 당신이 그렇게도 꾸짖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위선의 짐을내려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분명히 말씀하셨고 뿐만 아니라 천지가 없어지더라도 당신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못박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옴쭉달싹할 수없는 위선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말씀이 그토록 준엄하고 우리의 행동은 양다리를 거쳤기에 우리는 고스란히 당신이 내린 위선자의 저주를 뒤집어 쓸 수밖에 없겠지요? 진실하신 주님. 우리가 당신 말씀에 진실해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당신 말씀의 진실에 우리의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기꺼이 걸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적당히"란 말은 아예 빼버리신 주님 "적당히"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는 너무 약한 존재들입니다. 감옥도 무섭고 고문도 무섭고 몰아대는 여론도 무섭고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모든 것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신 당신이 무섭습니다. 당신께는 "적당히"가 통하지 않기에 당신을 따르는 것은 바로 "순교"를 의미하겠지요? 순교를 생각하지 않고 당신을 따르겠다는 것은 바로 위선이겠지요? 무수환 순교자들을 생각하고 놀랍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리도 용감하게 모든 걸 내팽개칠 수가 있었을까? 그들에게는 고통을 달콤한 기쁨으로 바꾸는 당신의 특별한 은총이 주어졌을까? 죽음이 주는 공포의 큰 어둠을 건너뛸 수 있는 특별한 빛이 있었을까? 그들의 어설픈 교리 지식으로 일상의 안락함을 차버릴 수 있게 하지는 않았겠지요? 오직 당신께 대한 확신 하나만으로 그들은 버티었겠지요? 당신께 대한 확신, 주여, 우리도 그 확신 속에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 그 확신으로 살아가게 해주소서. 순교자들의 하느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출처 : 마음이여 잔잔히 흘러라 - 故윤임규(토마)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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