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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올바른 시야/영적성장을 위한 감성수련 문종원신부님
작성자조연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8-05-17 조회수419 추천수4 반대(0) 신고



 
*올바른 시야  *
 
“소문을 듣고 어리둥절해졌다.
왜냐하면 여러 말이 들려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시야를 갖느냐에 따라 혼란스러울 수 있고

반대로 진리를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혼란스러움은 볼 것을 못보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며

들어야할 것을 못 듣고 듣지 말아야 한 것을 듣는

한마디로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 지를 모르는

현대인의 심정을 잘 표현해 주는 단어입니다.

너무도 무성한 거짓 약속과 정보들 그리고 뜬소문 때문에

아니면 내면의 진실을 볼 여유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시야는 지각으로부터 옵니다.

이것은 본능적으로 우리의 반응에 영향을 줍니다.

만약 상황이나 사람을 오해하면, 우리는 분명히 잘못 응답할 것입니다.

시야를 잃거나 왜곡함으로써 진실을 더욱 왜곡할 수 있습니다.

전후 관계없이 어떤 것을 취할 때

그리고 전체 그림을 고려하지 않음으로 해서 편협해 집니다.


시야를 세련되게 할 때 우리는 내면의 진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듣고, 관찰하고 이해하면서 시각을 교정할 수 있습니다.

우선 보는 시각을 알고 성장시키고 확대할 수 있도록

자신을 개방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좋은 자극과 환경들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그곳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서는 신앙인들의 시각을 갖는데 있어서 첫 번째 원천이 됩니다.

창세기 1장서부터 4장까지는 근본적인 인간관계의 이상과 현실의 특성

모두를 이해하는 근간이 됩니다.

달리 말하면, 하느님, 우리 자신 그리고 자연과 물질적 세상 등의

관계성을 이야기합니다.

선조로부터 온 관계성의 파괴는 우리 모두에게 올바른 시각을 가리우는

오점과 그림자를 남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각자는 살아오면서 어떤 경험과 상처들로 인해 시각이 왜곡됩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오점에 대해 충고할 때,

왜곡해서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의 시각은 참된 근원으로부터 생긴 것인가?

그리고 자주 이 우물로부터 물을 마시고 있는가? 


혼란스럽게 만드는 상황과 생각들로부터 떨어져서

마음 속으로 전체 그림을 그리는 겁니다.

사소한 일로 우리의 비전을 망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규칙적으로 우리의 시각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과 관계에 우리의 시각이 어떻게 영향을 주는 지 관찰하는 겁니다.

한 가지 좋은 시각을 갖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성숙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평정을 유지하며 행동하는 지를

관찰하는 것도 좋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들의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겁니다.


선입견, 왜곡 그리고 혼란스러움의 뿌리는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불신하는 인간의 교만과

이것으로부터 연유된 불순종의 결과인 파괴된 관계로부터 생깁니다.

컴퓨터와 같이 우리의 몸, 마음 그리고 정신은 데이터에 따라 움직입니다.

우리는 성서, 전통 그리고 현존하는 교회의 데이터에 따라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우리 모두는 실존적으로 한계와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원들이 모인 공동체가 한계와 약점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한계와 약점이 강하게 노출되어 큰 위기를 맡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라자로에게는 문둥병으로 도전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대문간에다 라자로를 들어다 놓습니다.

대문간은 문밖을 말하는 것이고

이것은 소속되어 있는 공동체로부터 버림을 받은 상황을

상징적으로 잘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거지로서의 채워지지 않는 생존 욕구와 함께 더 고통스러운 것은

소속감의 상실로 인한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간 심리적인 소외입니다.


누구나 그리고 어떤 공동체든 문둥병과 같은 위험에 처하고

도전을 받게 됩니다. 이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 까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로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싸움을 잘 싸우라고 말씀하시면서 빌라도 앞에서 증언하신 것처럼

당당하게 싸우라는 겁니다.


우리는 인내와 끈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상황에 대해서도 인내해야 하지만

제일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자신에 대해서 인내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인내하라는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의 말씀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위기를 겪으면서 극복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현재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근심하고 우울해 지는 것은 미래를 자꾸 앞당겨서 생각함으로써 생깁니다.

우리는 상상으로 만들어서 걱정하면서

정작 지금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몰두하지 못합니다.


또 하나는 걱정과 불안의 장막을 통과하기 위해서

벽안에 몇 개의 구멍을 만드는 것입니다.

구멍이 몇 개 생기면 그 구멍을 통해서

반대편 세상의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엿볼 수 있게 됩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키시는 방식에 대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힘들고 짜증이 날 때 계속 이 구멍으로 들여다보면

더 지치고 희망이 꺾이게 됩니다.

더 부정적이고 신경질적이 됩니다.

반대편 구멍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긍정적인 아름다운 세상이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몹시 지쳐 인내와 끈기를 잃을 때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질문하고 느낀 것들을 진솔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때때로 비탄의 목소리를 통해 하느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라도

하느님 말씀을 기초로 기도 드릴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일이든 어떤 상황이든

완전히 캄캄한 밤만이 지배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럴 때라도 성령께서는 위로를 주시며

아주 작은 빛이라도 끄지 않으시며

그 영혼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이끄십니다.  


인간이 불평을 하고 좌절감을 맛볼 때라도

인자로이 받아 주시는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포함해서 상대방 또는 공동체 모두는

자칫하면 이러한 한계와 약점이 드러나면

서로가 대문간 앞에 갖다 놓고 대중 앞에 폭로하고 소외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모든 한계와 약점까지도 인정해 주시고 받아 주시는

하느님께서 계시기에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진리를 보여주시고,

지금 당신은 우리를 통해 그것을 이루시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어두움과 황량함 가운데서도 계시다는 것과

우리의 인내와 끈기를 기억하시고

지탱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cafe.daum.net/mj1992

영적 성장을 위한 감성수련문종원베드로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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