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님 강론 말씀)
2008.5.23 연중 제7주간 금요일
야고5,9-12 마르10,1-12
"정주(定住)의 비결"
책 소개란에서 언뜻 본 다음 구절에 공감했습니다.
“나는 삶보다 숭고한 종교(宗敎)도,
가족보다 신성한 경전(經典)도 알지 못한다.”
평범한 삶이 바로 비범한 삶임을 일깨우는
깨달음의 고백 같은 말입니다.
새삼 평범한 정주의 삶이 비범한, 깊은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닷가에 갈 때마다 늘 눈 길 가는 게 바위들입니다.
수 만년 동안, 거기 그 자리에서 결코 물러나지 않고,
온갖 파도에 깎이고 닦인 신기한 모습들은 그대로 정주의 표상입니다.
마찬가지로 유적지에 갈 때 마다 눈에 띄는 게
오래된 기품 있는 노목들입니다.
수 백 년 동안,
거기 그 자리에 온갖 풍상고초를 견디어 낸 나무들 역시
정주의 표상입니다.
믿음으로 평생을 거기 그 자리에서
정주의 삶을 살아 온 노수도자들이나 노부부들을 대하면
마치 바닷가의 바위들을, 유적지의 노목들을 연상하게 됩니다.
믿음의 삶은, 정주의 삶은 결코 비범하지 않습니다.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평범한 인내의 삶입니다.
부부간의 일치나,
수도공동생활에서 주님과의 일치나 형제들 간의 일치는
결코 낭만도 감상도 아닙니다.
결혼했다하여, 종신 서원했다 하여 즉각적인 일치가 아니라
평생과정을 통한 일치입니다.
“따라서 이제 그들은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이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
끊임없는 세상 파도,
세상 비바람의 시련을 겪어가며 완성되어 가는 서로간의 일치입니다.
주님 안에서 다양성의 일치이자 상호보완의 일치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평생 정주의 삶의 비결을 가르쳐주십니다.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예언자들의 고난과 끈기를 본받으십시오.
사실 우리는 끝까지 견디어 낸 이들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맹세하지 마십시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며
정주의 삶에 항구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원망하지 않는 삶,
끝까지 견디어 내는 삶,
경솔히 맹세하지 않는 겸손한 삶입니다.
침묵과 인내의 나무들처럼, 바닷가의 바위들처럼
끝까지 견디어 내야 구원입니다.
과연 주님은 동정심이 많으시고 너그러운 분이십니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받아들여 주시고,
내 삶의 거기 그 자리에서 항구할 수 있도록
믿음과 희망, 사랑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시도다.”(시편103,8ㄱ).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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