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떠나던 날 아침이었습니다. 할머니 등에 업혀 있던 막내가 엄마에게 가겠다고 막 떼를 쓰며 우는 겁니다. 아마 그 애도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엄마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나 봅니다. 다른 때는 엄마를 봐도 그렇게 가겠다고 하지 않았거든요. 아내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는 차 안에서 울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 애는 내 목숨과 바꾼 아이야.’
신부님, 집사람은 성모님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매월 첫 토요일마다 남양 성모성지에서 미사에 참례하고 묵주기도를 바치고 성체조배를 했습니다. 집사람이 오지 못할 때는 저나 제 아이들이 대신 오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남양 성모성지를 처음 찾은 것은 셋째 딸이 병에 걸려 몹시 아플 때였습니다. 그때 성모님께 기도드리면서 딸의 병을 낫게 해주시면 매월 첫 토요일에 성모님께 찾아오겠다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때부터 매월 첫 토요일마다 성지에 왔습니다. 그러면서 더욱더 성모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신부님, 사실 제 아내는 한 번 낙태한 경험이 있습니다. 아기를 임신한 사실을 모르고 감기약을 먹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모두 낙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두려움에 그만 낙태를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울면서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매일매일 그 아기를 위해 기도했고 용서를 청했습니다. 아내가 여섯 번째 아기를 임신하고 몸이 아파 병원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의사가 암이라며 아기를 낙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나는 성모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결코 낙태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병원을 나와 성모님께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성모님, 아기를 낳겠습니다. 다시는 낙태하지 않겠습니다. 제 생명을 바칩니다. 대신 건강한 아기를 낳게 해주십시오.’ 아내는 가능한 한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묵주기도를 드리면서 건강한 아기를 낳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바라던 대로 건강한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몸에는 암세포가 다 퍼졌고 아기가 막 첫돌이 지났을 무렵 호스피스 병동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섯 아이들과 저를 남겨두고 그토록 사랑하던 성모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신부님, 제 아내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집에 두고 온 젖먹이 막내를 제외한 다섯 명의 딸과 함께 성모님 앞에서 아내를 위해 기도드리던 그 형제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아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그 엄마에게 주님께서 틀림없이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이라 믿는다.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기 때문이다.
이상각 신부(수원교구 남양성모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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